핵심 요약
AI 요약
바이낸스 지갑이 비기 시작한 건 30일 새벽 5시 5분(한국 시간)이었다. 20분 사이 대부분의 자산이 빠져나갔고, 털린 블록체인은 모두 10개였다. 바이낸스는 공식 발표를 통해 총 피해 규모를 약 63억달러(약 8조4000억원)로 추산하면서도, 자체 지갑의 원천 열쇠인 마스터 비밀키가 직접 유출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열쇠를 훔친 사건이 아니라 서명을 받아 낸 사건이다.
XRP에서 이더리움까지, 20분의 타임라인
준비는 이틀 전부터 시작됐다. 본지가 블록체인 탐색기 이더스캔(Etherscan)을 통해 공격자 지갑의 온체인 트랜잭션 17건을 전수 대조했다. 이 주소는 28일 오후 4시 39분부터 세 차례,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의 0.1ETH 풀에서 약 0.098ETH씩 받았다. 토네이도 캐시는 자금 출처를 섞어 감추는 믹서 서비스다.
29일 밤 첫 공격 코드의 시험 대상은 다른 주소 두 곳이었다. 30일 0시 59분 공격에 쓸 컨트랙트를 배포한 뒤, 1시 20분부터는 세 번째 주소에서 마지막 예행연습을 했다. 공격자의 치밀한 사전 모의는 자금 탈취 최소 36시간 전부터 가동됐다. TRM 랩스(TRM Labs) 포렌식 추적 결과, 공격자는 세 번째 주소에서 최종 예행연습을 마친 지 불과 4시간 만에 동일한 악성 코드를 바이낸스 지갑에 성공적으로 심었다.
본 공격은 짧았다. 첫 자금 유출은 새벽 5시 5분 바이낸스의 XRP 지갑 5곳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불과 4분 만에 XRP 2억3346만개가 공격자 주소 한곳으로 결집됐으며, 온체인 추적 데이터상 솔라나와 옵티미즘 네트워크가 그 뒤를 따랐다. 5시 20분에는 비트코인 핫월렛에서 비트코인 1만8270개가 나갔고, 같은 시각에 이더리움 지갑에 위임이 설치됐다.
| 시각(KST) | UTC | 체인 | 일어난 일 |
|---|---|---|---|
| 10/28 16:39 | 10/28 07:39 | 이더리움 | 공격자 주소에 토네이도 캐시 첫 입금(총 3회) |
| 10/30 00:59 | 10/29 15:59 | 이더리움 | 위임 대상 컨트랙트 배포 |
| 05:05~05:09 | 20:05~20:09 | XRP 레저 | 바이낸스 지갑 5개에서 XRP 2억3346만개 유출 |
| 05:10 이후 | 20:10 이후 | 솔라나·옵티미즘 | 유출 |
| 05:20 | 20:20 | 비트코인 | 핫월렛에서 1만8270개 유출 |
| 05:20:59 | 20:20:59 | 이더리움 | Binance 14 지갑에 EIP-7702 위임 설치 |
| 05:22 전후 | 20:22 전후 | 트론 | USDT 6억1270만개·TRX 4640만개 유출 |
| 05:24:23 | 20:24:23 | 이더리움 | Binance 14 쓸어담기 |
| 05:41 | 20:41 | 이더리움 | Hot Wallet 34에서 USDC 7억8000만개 유출 |
| 08:05 | 23:05 | 아발란체·폴리곤 | 2차 유출 |
| 08:56 | 23:56 | 이더리움 | 마지막 쓸어담기 |
5시 24분의 거래 하나가 가장 컸다. 바이낸스의 핵심 이더리움 핫월렛인 Binance 14에서 16만7464ETH, 테더(USDT) 16억1500만개, 알트코인 62종이 한꺼번에 새 주소로 털려나갔다. 악성 위임 코드가 서명 인프라를 통해 설치된 지 불과 3분 24초 만에 벌어진 일이다.
금고 열 개가 같은 꾸러미 하나로 20분 만에 차례로 열렸다.
63억달러 유출과 30억달러 동결, 손실 33억달러의 실체
바이낸스는 30일 오전 11시 23분 공식 공지에서 전체 추정 피해 규모를 약 63억달러, 각 프로토콜과 공조해 온체인에서 동결한 자산을 약 30억달러(약 4조원)로 공식 확인했다. 사고 직후 돌던 숫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사고 직후 집계된 초기 온체인 피해액은 55억7000만달러였지만, 이는 이더리움·비트코인·트론 3개 블록체인만 합산한 수치였다. 이후 피해를 입은 10개 네트워크를 전수 합산하자 탈취 총액은 63억6000만달러로 불어났다.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크기의 그물로 건진 셈이다.
63억달러에서 동결분 30억달러를 빼면, 약 33억달러(약 4조4000억원)가 남는다. 유출 자산 중 42만ETH 이상과 비트코인 1만8270개, 약 24억달러 상당은 특정 중앙 발행사가 없어 기술적으로 동결이 불가능한 자산이다. 나머지 9억달러가량은 동결되기 전에 다른 자산으로 바뀌었거나, 아직 추적 중인 몫이다.
도둑이 들고 나간 가방의 절반엔 풀리지 않는 자물쇠가 걸렸다.
초기에 나온 추정은 이보다 훨씬 작았다. 창업자이자 CEO인 자오 창펑(CZ)은 순손실이 10억달러 정도라는 추정에 “손실은 그보다 조금 더 클 수 있지만 전액 보전하겠다”고 직접 입장을 밝혔다. 공식 수치와 비교하면, 동결되지 않은 금액만 그 세 배를 넘는다.
종전 최대 기록과 견줘도 차이가 크다. 2025년 2월 바이비트 사고 당시 빠져나간 14억6000만달러와 비교하면 총영향 기준 4.3배, 동결 뒤 남은 금액 기준으로는 2.3배다. 온체인 통계 플랫폼 디파이라마 통계를 대조하면, 2026년 10월 26일까지 발생한 가상자산 해킹 315건의 총 피해액은 23억6900만달러에 달했다. 바이낸스 한 건이 그 2.66배다.
DevOps 노트북 침해에서 서명 인프라 탈취까지
바이낸스는 공지에서 공격 경로를 이렇게 적었다.
“바이낸스 초기 조사 결과, 이번 보안 사고는 DevOps 엔지니어의 노트북이 침해되면서 공격자가 서비스 컨테이너에 접근해 승인되지 않은 출금 거래를 제출한 정황과 맞물려 있다.”
DevOps는 개발과 서버 운영을 함께 맡는 직무다. 같은 공지는 바이낸스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지갑 자체의 개인키가 유출된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표현은 ‘관련됐을 수 있다’에 머문다. 아직 초기 조사 결과이지만, 공지대로라면 DevOps 엔지니어의 업무용 노트북 한 대가 핫월렛 서명실의 프리패스 출입증 노릇을 한 셈이다.
거래소 지갑은 크게 두 가지다. 출금을 바로 처리하려고 인터넷에 연결해 둔 핫월렛(hot wallet)과, 인터넷과 끊어 보관하는 콜드월렛(cold wallet)이다. 이번에 털린 곳도 핫월렛이다.
이더리움에서 쓰인 수단은 위임이었다. 보안 분석업체 블록에이드(Blockaid)의 추적 결과, 공격자는 위임 승인 50개를 거래 하나에 묶어 Binance 14 지갑으로 전송했고 지갑의 거래 순번인 논스(nonce)와 맞은 1건이 체결됐다. 지갑이 다음에 어떤 순번을 쓸지 몰라, 순번마다 승인을 하나씩 미리 받아 둔 것이다.
나머지 9개 체인에는 위임도 없었다. TRM 랩스는 9개 체인 전반에서 바이낸스 지갑이 일반 유효 서명 송금으로 자산을 유출한 점을 들어, 포렌식 분석을 통해 “바이낸스 핫월렛 내부 서명 인프라가 전면 침해됐음을 가리킨다”고 결론지었다. 서명 인프라는 거래에 전자서명을 붙여 주는 거래소 내부 시스템이다.
금고 비밀번호는 그대로였고, 비밀번호를 대신 눌러 주는 기계가 속았다.
두 발표를 종합하면 핵심 의문이 명확해진다. 공격자가 서비스 컨테이너에서 보낸 요청에 서명기가 단순 출금이 아닌 위임 권한 승인까지 결재해 줬다면, 서명기가 서명 대상 트랜잭션의 성격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셈이다. 사고 직후 바이낸스가 침해된 지갑의 위임 권한부터 긴급히 철회한 점이나, 허 이(Yi He) 공동 CEO가 공식 발표를 통해 출금 프로세스와 주소 통제 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고 있다고 밝힌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최종적인 기술적 원인은 바이낸스가 예고한 사후 분석 보고서에서 규명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