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AI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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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쪽에 달하는 기업 공시나 연차보고서를 AI에 맡겼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표다. 한 페이지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재무제표는 둘로 쪼개져 열 제목을 잃어버리고, 아래쪽에 딸린 주석은 엉뚱한 숫자에 붙어 본래 의미를 왜곡하기 일쑤다. 바이두(Baidu)의 공식 리포지토리에 2026년 10월 27일 공개된 광학 문자 인식(OCR) 모델 Unlimited OCR 2는 바로 이 페이지 경계에 걸린 표와 문단을 하나의 흐름으로 꿰매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글자는 다 읽어냈는데 표를 다시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면 자동화의 의미는 퇴색한다. 숫자를 빠짐없이 옮겨 적어도 열 제목이 사라지면 어느 숫자가 매출인지 비용인지 알 길이 없다. 긴 문서를 처리할 때는 개별 글자의 정확도 못지않게 원래의 배치와 앞뒤 연결을 복원하는 작업이 핵심으로 떠오른다.
페이지 경계에 걸린 표… 분절과 연속의 복원 메커니즘
설명용으로 회사의 연간 매출 보고서를 떠올려보자. 한 페이지에 서울과 부산의 실적이 적혀 있고, 다음 페이지에는 대구와 광주의 실적이 이어지며 두 페이지 모두 상단에는 동일한 열 제목이 인쇄되어 있다.
사람은 같은 표가 이어진다고 읽는다.
하지만 기계의 복원 결과가 쪽마다 별개의 표로 쪼개져 나온다면, 결국 사람이 두 표를 이어 붙이고 반복된 열 제목을 일일이 지워내야 한다. 다음 페이지의 첫 숫자가 알맞은 열에 맞춰 들어갔는지 대조하는 수작업도 피할 수 없다. 문장 역시 쪽 끝에서 잘려 나가면 앞뒤 조각을 이어 읽어야만 비로소 문맥이 통한다.
실제 보고서에서는 숫자 밖의 부가 조건도 복잡하게 얽힌다. 한국은행의 「2025년도 연차보고서」 웹 본문에 실린 금융기관 수신 비교 표가 대표적이다. 은행 수신 항목은 은행·중앙정부·비거주자 예금을 제외한 기준이며, 표 하단 주석에 이 세부 산정 조건을 명시했다. 숫자만 따로 떼어 옮기면 데이터의 비교 전제를 완전히 놓치게 된다. 이 연차보고서는 모델 시험 대상이 아닌, 표와 주석이 함께 유지되어야 하는 실무적 이유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공식 안내 문서는 Unlimited OCR 2의 여러 페이지 처리 기능이 문서의 페이지 이미지들을 순서대로 받아 단일 요청 안에서 처리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앞뒤 페이지 사이에 흐르는 문맥을 연산에 활용하는 구조를 갖췄다. 입력 파일을 단순 묶음으로 한꺼번에 밀어 넣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공개된 변환기 코드를 살펴보면 모델이 처음 내놓는 원시 출력에는 페이지와 본문 블록을 구별하는 특수 표식이 붙는다. 페이지 경계를 넘는 연속 표에는 시작을 알리는 표식과 이어짐을 알리는 표식이 각각 부여된다. 공개된 후처리 변환기는 이 표식 좌표를 기준으로 쪼개진 표 조각을 하나로 합치고, 두 번째 페이지 상단에 반복 인쇄된 열 제목 행을 자동으로 걷어낸다. 문단의 이어지는 조각 역시 읽는 순서에 맞춰 하나의 줄글로 결합한다. 앞선 가상 매출 표라면 서울부터 광주까지를 끊김 없는 단일 표로 이어주는 셈이다.
다만 완성된 표는 모델이 찍어낸 표식과 후처리 변환기의 알고리즘이 합작한 결과물이다. 겉으로 드러난 표 외관이 매끄럽다는 사실만으로 모델이 보고서에 담긴 비즈니스 맥락까지 완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메모리 병목 해소… 슬라이딩 윈도우와 작업 참조 집합의 한계
수백 쪽 분량을 끊김 없이 다루려면 컴퓨터 하드웨어의 메모리 부담을 덜어내는 알고리즘이 필수적이다. 책상 위에 읽어 치운 종이를 계속 넓게 펼쳐두면 언젠가 공간이 바닥나듯, 처리 중인 시각·문자 데이터를 메모리에 얼마나 오래 붙들어둘지가 연산의 성패를 가른다. 허깅페이스 모델 카드에 등재된 핵심 기법은 희소 참조 슬라이딩 윈도우 어텐션(SR-SWA)이다. 긴 입력 전체에 걸친 글자와 이미지의 상호 참조 연산을 일정한 고정 크기(512개 토큰)의 작업 참조 집합으로 압축하는 원리다. 모델 소개 문서에서는 이 기법을 통해 출력 단계를 밟아갈 때 소요되는 지연시간과 메모리 점유율이 문서 길이에 비례해 폭증하지 않도록 통제했다고 설명한다.
책상이 작아도 책을 끝까지 읽을 길은 열린다.
여기서 규정한 작업 참조 집합은 사람이 작성하는 요약 메모와 달리, 신경망이 계산 과정에서 사용하는 압축된 내부 수학 표현이다. 책상이 좁아도 두꺼운 책을 덮지 않고 끝까지 넘겨볼 통로는 확보됐다. 그러나 책 전체를 완독하는 총 소요 시간이 짧은 소책자를 읽을 때와 같아질 수는 없다. 생성해야 할 출력 글자 수가 많아질수록 밟아야 할 디코딩 단계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모델명에 붙은 Unlimited라는 수식어를 무한한 기억 용량이나 오점 없는 완벽한 복원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100문서 마라톤 벤치마크… 77점의 성과와 VLM 비교의 착시
개발팀은 백 쪽 단위의 극단적인 장문 문서를 평가하기 위해 공개된 마라톤독벤치(MarathonDocBench)를 함께 내놓았다. 중국어와 영어가 혼합된 100건의 문서로 구성되었으며, 문서당 분량은 100~300쪽에 달해 전체 평가 규모는 약 1만8000쪽에 이른다. 페이지 경계를 넘나들며 길게 이어지는 본문과 대규모 연속 표가 평가 데이터의 핵심을 이룬다.
공식 평가표에서 Unlimited OCR Works 2는 종합 점수 77.06점을 기록하며 벤치마크에 등재된 모델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다만 이 점수는 글자·표·수식 편집 거리와 읽기 순서 등을 측정하는 8개 세부 지표의 산술 평균값이다. 글자 100자 중 77자를 정확히 맞혔다는 단순 정확도로 환산할 수는 없다. 이 점수표는 문서가 극단적으로 길어졌을 때 기존 거대 멀티모달 모델(VLM)들이 겪는 구조적 한계도 함께 드러낸다.
벤치마크 평가 설명을 뜯어보면 비교 대상에 오른 일반 VLM 모델들은 전체 페이지 이미지를 단일 요청으로 수신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상용 서비스의 요청당 이미지 수 한도나 출력 토큰 상한에 걸려 중도 탈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벤치마크 평가단은 처리에 실패한 문서를 빈 결과(0점)로 처리한 채 전체 문서 100개를 분모로 유지하여 평균을 냈다. 시험지를 끝까지 제출하지 못한 채 탈락한 시험 점수가 그대로 총점에 반영된 셈이다.
결국 77점의 비밀은 인식의 정확도가 아니라 완주의 버팀목이다.
순위표에 나타난 큰 격차는 순수한 글자 판독 실력 차이라기보다, 단일 요청으로 수백 쪽의 분량을 버텨낼 수 있는 아키텍처 지원 여부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를 짧은 단면 문서를 처리할 때의 품질 격차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국어 연속 표 검증 부재… 창 크기 조절에 따른 트레이드오프
연속 표를 자동으로 복원하려는 기술적 시도는 실무적으로 반가운 진전이지만, 메모리 절감과 병합 품질이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공식 실행 문서는 문서를 일정 묶음으로 나누어 처리하는 페이지 창(Page Window) 설정을 상세히 안내한다. 이 창의 크기를 작게 줄이면 메모리 사용량의 순간 정점은 낮출 수 있지만, 묶음의 경계면에 걸친 텍스트 블록이 문맥을 잃어버려 조각 병합 품질이 현저히 저하된다고 공식 문서는 명시적으로 경고한다.
앞서 든 가상 매출 표에서 서울과 부산까지가 첫 번째 묶음에 속하고, 대구와 광주부터가 두 번째 묶음으로 쪼개지는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표가 매끄럽게 이어져야 할 정중앙에 시스템의 처리 경계선이 놓이는 꼴이다. 모든 페이지 경계에서 연결이 끊긴다는 뜻은 아니지만, 메모리를 아끼기 위해 창을 좁히는 순간 가장 중요한 연결 기능이 취약해지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마라톤독벤치 데이터셋의 언어 구성은 중국어와 영어 두 갈래로 한정되어 있다. 한글 자모 체계와 복잡한 단서 조항이 얽힌 한국어 보고서의 연속 표 연결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영역이다.
마지막 글자를 읽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주석과 숫자를 잇는 검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