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싱크탱크 비전(Vision) 소장 프란체스코 그릴로(Francesco Grillo)는 AI의 기후 영향이 전력 소비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제도와 활용 방식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그릴로 소장은 10월 12일 더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AI의 전력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기후 대응에 활용할 여지도 크다고 주장했다.
AI 전력 소비는 빠르게 증가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훈련하고 작동시키는 데 쓰이는 전력은 챗GPT(ChatGPT)가 출시된 2022년 11월 이후 약 10배 증가했다. AI 데이터센터는 현재보다 최대 20배 많은 전력을 쓸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AI에 특화된 데이터센터 한 곳의 전력 소비량은 일반 가정 10만 가구가 쓰는 전력과 맞먹는다는 설명이다.
AI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약 155테라와트시로, 전체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의 3분의 1 수준이다. 전 세계 전력 소비량과 비교하면 약 0.5%, 석유·가스 등까지 포함한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약 0.1%다. 구글(Google)의 모회사 알파벳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는 구글 AI 제품의 월간 사용량이 지난해보다 7배 늘어 3.2천조 토큰에 이르렀다고 밝힌 바 있다.
모델의 작업 한 건당 전력 소비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사용량 증가가 효율 개선 효과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게 그릴로 소장의 지적이다. 기술 발전으로 효율이 높아져도 이용이 늘면서 전체 소비가 다시 증가하는 현상은 경제학에서 ‘제번스의 역설’로 불린다. 데이터센터가 특정 지역에 몰리면 전체 사용량이 차지하는 비중과 별개로 지역 전력망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아일랜드와 미국 버지니아주 북부가 사례로 거론됐다.
AI 기후 대응 효과와 관리 과제
AI가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유럽중기예보센터는 2025년 AI 기상예측 모델 AIFS를 도입했다. 이 모델은 물리 법칙에 기반한 기존 예측 모델보다 개선된 예보를 내놓고, 30일 뒤 특정 거리에서 비가 올지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극한 기상 현상의 발생 가능성을 더 세밀한 지역 단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그릴로 소장은 설명했다. 정부와 보험사가 재난 위험을 평가하고 대비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도 기존 물리 기반 예보 체계보다 적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 작성에도 AI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공개형 AI 모델을 적절히 쓰면 편향을 줄이고, 위험 예측을 넘어 대응 방안과 적응 정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각국 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농가, 가정이 작물 선택이나 주택 단열 같은 결정을 내릴 때도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실현된 성과가 아니라 그릴로 소장이 제시한 가능성이다.
그릴로 소장은 AI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활용을 관리할 유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에는 거의 매년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같은 국제 협의 체계가 있지만, AI 분야에는 자율 규범과 간헐적인 정상회의, 지난해 출범한 유엔 과학 패널 정도만 있다는 설명이다. 그가 이끄는 싱크탱크 비전의 새 연구는 AI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양쪽 측면에서 살폈으며, 결과는 10월 15∼17일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비전의 제5차 기후변화 거버넌스 회의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연구는 AI의 에너지 부담이 우려보다 작고 기후 대응 잠재력은 클 수 있다고 봤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두 가능성 모두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