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금융거래망 밖에서도 개인정보는 무력하게 새어 나갔다. 이번 금융권 연쇄 해킹 사태는 외부 업무시스템의 인증 체계와 데이터 조회 권한, 침해 사고 탐지 구조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재점검이 왜 시급한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했다. 공격자의 인공지능(AI) 악용 여부는 향후 수사를 통해 규명될 사안이지만, 무너진 방어선을 재구축하는 일은 결코 수사 결론을 기다릴 문제가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10월 4일 긴급회의에서 대출모집인과 위탁업체, 임직원이 사용하는 외부 접점을 빠짐없이 점검하라고 주문했다. 고객용 뱅킹 앱과 분리된 업무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고객의 성명, 연락처, 대출 심사 정보를 취급한다면 금융사가 엄격히 통제해야 할 핵심 자산에 해당한다. 폐쇄된 핵심 거래시스템이 무사하다는 해명만으로 개인정보 보호의 법적·윤리적 책임이 끝나지는 않는다.
“핵심 거래시스템이 안전하다는 설명만으로 고객 개인정보 보호의 의무가 끝나지는 않는다.”
공격·유출·발견의 엇갈린 시간표… 금융사별 방어의 공백
최초로 공격 표적이 된 회사와 사고를 가장 먼저 인지한 회사는 서로 달랐으며, 초기 침투 시도와 실제 데이터 탈취가 시작된 시점 역시 뚜렷하게 갈렸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체(온투업체) 모우다는 9월 29일 공지를 통해 유출 가능성을 공식 발표했고, 신한은행은 10월 1일 사과문을 게재했다. 10월 8일까지 금융사가 공시한 설명과 침해 사고보고서 보도를 종합해 대조한 9개 금융사의 시간표는 다음과 같다. 최초 공격 시점 순으로 정리했으며, 모든 시각은 한국시간 기준이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침해 사고보고서에 따르면 9월 18일 최초 침투 시도를 받았다. 실제 정보 유출은 열흘 뒤인 28일부터 48시간 56분 동안 이어졌다. 최초 침투 시점만 비교하면 신한은행보다 먼저 표적이 된 금융사가 여럿 존재한다. 따라서 업계 전반의 유출이 9월 28일에 동시다발적으로 개시됐다고 묶어 볼 근거는 희박하다.
신한은행은 9월 29일 오후 1시 43분 서비스 중단을 단행했으나, 같은 날 오후 8시 30분 다른 IP를 통한 2차 공격이 시작됐다. 최종 IP 차단은 30일 0시 15분에야 이뤄졌다. 최초 접속부터 최종 차단 시점까지의 전체 구간을 무작정 유출 지속 시간으로 단순 계산해서는 안 되며, 중간 단계에서 어떤 정보가 어느 규모로 빠져나갔는지는 세부 트랜잭션 로그로 검증해야 한다.
현대캐피탈의 경우 9월 27일 오전 7시 1분에 1차 공격이 종료됐다. 웰컴저축은행은 10월 2일 오후 4시 12분 초기 IP를 차단한 뒤 오후 4시 25분 공격이 끝났다고 금융당국에 보고했다. 금융보안원이 국회와 관계 당국에 제출한 침해 사고 경과 보고에 따르면 두 회사는 금융보안원이 공유한 공격 IP 및 이상 징후 정보를 교차 점검하면서 뒤늦게 피해 사실을 파악했다. 공격이 종료된 시점과 금융사가 사고를 인지한 시점 사이의 공백 역시 방어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할 핵심 척도다.
차단 기록이 존재한다고 해서 침해 방어가 완결된 것은 아니다.
모집인 포털부터 모바일 ODS까지… 개인정보가 새어 나간 3대 경로
신한은행의 공식 침해 설명에 따르면 공격자는 대출모집인용 처리 현황 조회 경로에서 본인 확인을 무력화했다. 입력값을 무작위로 대입하는 자동화 방식으로 고객번호를 확보한 뒤, 이 식별자를 이용해 연계된 다른 개인정보까지 조회했다. 일선 업무에 필수적인 데이터 조회 기능이 역설적으로 정보 탈취의 고속도로가 된 셈이다. 단순 로그인 인증뿐만 아니라, 특정 사용자가 특정 고객 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인가(Authorization)’ 체계가 결여된 전형적인 사례다.
KB국민은행에서는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을 통해 고객 99명과 임직원 20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하나은행 역시 외부에서 전자서식을 작성해 영업점 창구와 연동하는 모바일 영업지원시스템(ODS)이 공격을 받아 고객 89명의 정보가 빠져나갔다. 내부 직원용 시스템이라는 업무 분류가 다루는 개인정보의 위험도를 낮춰주지는 않는다.
피해 주체와 데이터의 성격도 금융사마다 달랐다. 현대캐피탈은 주택대출 모집인 조회 사이트에서 대출모집인 146명의 정보가 유출됐으며 고객 정보 침해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BNK부산은행은 세션 검증 결함이 있던 웹페이지를 통해 외주 개발직원 11명의 정보가 노출됐다고 공지했다. 고객과 직원, 위탁 모집인 피해는 법적 성격과 파급력이 다르므로 유출 건수와 피해 인원을 기계적으로 합산하는 혼선을 피해야 한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자체 조사 결과 인메모리 데이터 저장소인 ‘레디스(Redis)’ 시스템 취약점을 노린 침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유출이 일어난 통로는 저축은행중앙회의 안전한 폐쇄형 공동전산망이 아니라 금융사가 자체 운영하던 독립 웹사이트였다. 웰컴저축은행 역시 별도 구축한 외부 업무시스템에서 법인 고객 관련 정보가 빠져나갔다. 이번 사태를 단 하나의 API 인증 결함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이유다. 인프라 서버 취약점과 업무 권한 결함은 점검과 패치 방식부터 완전히 다르다.
사고 이전 점검이 전무했다는 단정도 경계해야 한다. 하나은행이 공고했던 2025년 하반기 보안 제안요청서는 공개용 웹·모바일 시스템의 취약점 상시 점검과 조치 후 재점검을 요구했다. 그러나 외주 점검을 발주했다는 사실 자체가 실제 운영 환경에서의 취약점 차단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이번에 뚫린 ODS 시스템이 당시 진단 대상에 포함됐는지, 발견된 결함이 제때 패치됐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 역시 유사한 외부 접근 시도를 받았으나 침해를 막아냈다. 금융당국이 파악한 금융권 접근 통제 현황을 보면 우리은행은 지정 단말기와 인증서·생체인증의 복합 인증 체계를 가동했고, 농협은행은 대출모집인에게 내부 전산망 접속 통로 자체를 열어주지 않는 구조적 분리 원칙을 적용했다. 하지만 두 은행이 받은 공격의 강도와 경로가 동일했다는 기술적 검증이 없는 상태에서 특정 인증 통제만을 피해 여부의 절대적 요인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직원용이라는 명칭이 다루는 개인정보의 무게를 낮춰주지는 않는다.
‘아텍스(ARTEX)’ 흔적과 자동화의 실체… AI가 맡은 공격의 범위
신한·KB국민·하나·부산은행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 금융사의 공격 패킷에서 AI 기반 모의 침투 도구인 ‘아텍스(ARTEX)’의 흔적이 확인됐다. 금융보안 당국은 10월 6일 침해 패킷 분석을 통해 공격 IP에서 ARTEX 시그니처를 포착하고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특정 도구의 지문이 발견됐다는 사실과, 모든 침해 과정이 AI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실행됐다는 주장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공개된 정황만으로 사건 전체를 완전 자율 AI의 결과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온투업체 피에프시티(PFCT)는 10월 4일 공지에서 IP 차단 후에도 곧바로 우회로를 찾아 연속 조회를 이어가는 패턴을 들어 AI 침투 가능성을 추정했다. 반면 모우다는 불법 접근과 정보 유출 가능성을 공지하는 데 집중했다. 반복적인 웹 요청이나 단순 우회 시도만으로 AI 사용을 확증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스크립트 기반 자동화 도구로도 무차별 요청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온투업체 사건까지 단일 공격 그룹이나 ARTEX 도구에 일괄 귀속하려면 추가 디지털 포렌식 증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 보안기업 안랩은 위협 침해 동향 분석을 통해 전 세계 약 600개 IP에서 ARTEX 서버 구동 흔적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보안 연구자나 화이트해커의 합법적 모의 침투테스트 서버가 포함된 수치다. 도구가 설치된 서버 숫자를 공격 배후 조직의 규모로 직결시키는 해석은 과장에 가깝다. 도구 내 중국어 인터페이스나 문서 역시 공격자의 국적을 단정하는 절대적 물증이 될 수 없다.
해커들의 AI 악용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오픈AI(OpenAI)는 2024년 2월 위협 인텔리전스 보고서를 통해 국가 연계 해킹 조직들이 정보 검색과 취약점 정찰 스크립트 작성에 LLM을 보조 도구로 악용했다고 공개했다. 당시 오픈AI는 GPT-4의 독자적 공격 능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사람이 수동으로 내린 지시를 AI가 거드는 보조적 활용과, 도구가 시스템 취약점을 스스로 탐색하고 익스플로잇까지 완결하는 ‘에이전틱 자율 공격’은 본질이 다르다. 이번 금융권 침해에서 후자가 어느 수준까지 작동했는지는 실제 서버 로그와 경찰 수사 결과로 입증해야 할 영역이다.
보안 전문가들이 공개한 10월 5일 기술 시연 분석을 살펴보면 ARTEX 구동 과정에서 취약한 샘플 웹 애플리케이션의 엔드포인트를 탐색하고 권한을 무력화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2초였다. 하지만 통제된 실험실의 모의 환경과 실제 복잡한 금융권 다중 보안 환경을 뚫는 난이도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도구 이름은 수사 대상이지만, 열려 있던 구멍은 당장의 방어 대상이다.
“공격 도구의 이름은 수사의 영역이지만, 취약한 조회를 열어둔 결함은 당장 막아야 할 방어의 영역이다.”
API 권한 검증과 데이터 최소화… AI 공격에 맞서는 방어의 조건
외부에 노출된 모든 엔드포인트 목록과 데이터 흐름을 전면 매핑해야 한다. 대출모집인 페이지가 내부 어느 데이터베이스 서버와 이어지고, 호출 시 어떤 개인정보 필드를 반환하는지 전수 점검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금융위원회는 10월 4일 긴급 대응 방안을 통해 업무상 불가피한 외부 접속이라도 조회 항목과 접근 권한을 최소화하는 ‘데이터 최소화 원칙’을 강력히 주문했다. 서비스를 즉시 중단할 수 없다면 노출되는 데이터의 양을 극단적으로 줄여야 한다. 단순 대출 심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화면에 주민등록번호 전체나 상세 금융 거래 내역이 반환될 이유는 없다.
모든 조회 요청마다 서버 단에서 엄격한 권한 인가를 수행해야 한다. 담당 직원이 직접 접수한 고객과 대출 건에 한해서만 열람이 가능하도록 세션과 리소스 간 매핑 관계를 매 호출마다 검증하는 방식이다. 국제 웹보안 표준기구 OWASP의 API 보안 가이드라인은 고객번호나 계좌 ID 등 식별자를 수신하는 모든 엔드포인트에서 객체 수준 권한 검증(BOLA 방어)을 수행하도록 권고한다. 프론트엔드 화면에서 메뉴를 숨기는 눈속임은 아무런 방어가 되지 못하며, 파라미터 변조나 직접 API 호출 시에도 백엔드 서버가 동일한 인가 규칙을 강제해야 한다.
침해 차단 체계는 단순 IP 필터링을 넘어 계정과 세션, 클라이언트 행동 패턴을 복합 분석하는 체계로 진화해야 한다. 단시간 내에 담당 외 고객의 번호를 연속 조회하는 비정상 트래픽을 즉시 탐지하고, 특정 IP를 차단했을 때 우회 IP로 동일한 조회가 이어지는지 실시간 추적해야 한다. 신한은행의 사례처럼 1차 IP 차단 이후 다른 경로를 통해 곧장 침투가 재개된 2차 공격 경과는 재접근 탐지 체계의 부재가 부른 결과다. 탐지 시각과 차단 조치 시각, 우회 재접근 차단 여부를 정밀 감사 로그로 보존해야 한다.
취약점 탐지와 실제 패치 사이의 시간 간극도 최소화해야 한다. 정기 점검 후 서비스 기능이나 파라미터가 수정되면 즉시 재검증을 수행해야 한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26년 7월 취약점 관리 가이드라인은 외부 노출도와 공격 가능성에 기반한 패치 우선순위 설정, 고위험 결함의 일 단위 집중 관리, 조치 지연 시스템에 대한 임시 격리 및 서비스 제한을 명문화했다. 보안팀이 결함을 찾아내도 개발·운영 부서가 패치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면 무방비 노출 상태는 유지된다.
방어 진영에서도 AI를 코드 검증과 로그 분석의 보조 도구로 적극 투입할 수 있다. 다만 AI가 도출한 이상 징후는 보안 엔지니어가 직접 재현하고 검증해야 한다. 보안 분석용 AI 모델에 고객 개인정보나 마스터 암호키를 무분별하게 입력하는 행위 또한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운영 서버 설정 변경과 차단 권한까지 AI에 전권을 위임할 수는 없다.
방어의 실력은 결함 발견 건수가 아니라 실제 패치 완료 시간으로 증명된다.
무차별 차단의 함정… ‘망분리’ 신화를 넘어 제로 트러스트로
외부 접점을 모조리 폐쇄하면 대출모집인과 현장 직원의 대고객 영업 업무가 마비된다. 조회 항목을 정밀하게 축소하는 작업 역시 막대한 개발 리소스와 업무 적합성 검토를 요구한다.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 금융사는 고가의 보안 솔루션 도입만으로 전문 보안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금융위원회의 AI 보안 가이드라인 역시 자동화 도구의 오탐(False Positive)과 과잉 대응으로 인한 정상 서비스 장애를 경고했다. 핵심 거래시스템 등 민감 업무에서는 AI가 단독 차단하지 않고 담당자의 최종 승인을 거치는 보완책을 제시했다. 자동화 차단의 범위는 침해 피해 위험과 복구 비용의 균형점 위에서 결정돼야 한다. 정상적인 대출 신청 고객까지 무차별 차단하는 과잉 방어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서비스 장애를 초래한다.
망분리 역시 만능 방패가 아니라 수많은 보안 계층 중 하나일 뿐이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SP 800-207)는 물리적 네트워크 위치만으로 신뢰를 부여하지 않고, 모든 자원 접근마다 개별 인증과 세션 권한을 검증하도록 명시한다. 폐쇄망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개별 애플리케이션의 인증 결함과 권한 누락을 면책해주지는 않는다. 금융위원회가 확정한 9월 금융 망분리 개선 로드맵 역시 보안 목적의 AI 활용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되, 엄격한 대체 보안 통제 장치를 전제로 규정했다.
현재 공개된 침해 사고보고서와 취재 보도만으로는 각 금융사의 직전 보안 진단 결과와 사후 조치 내역을 투명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이전 모의 점검에서 이번에 뚫린 조회 경로가 점검 대상에 포함됐었는지, 발견된 결함이 언제 실제로 패치됐는지, 차단 이후의 2차 침투 시도를 검증하는 통제선이 마련됐는지를 후속 취재로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 그 기록이 투명하게 검증될 때에만, 정부의 점검 요구가 요식 행위를 넘어 금융 소비자의 자산을 지키는 실질적인 방패로 안착할 수 있다.
구멍 난 외부 접점을 방치한 채 세운 망분리는 모래 위의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