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Unsupervised — Machine Hallucinations — MoMA》(이하 《Unsupervised》)를 기증받아 소장품으로 받아들였다. 아나돌은 미술관이 수집해 온 작품의 데이터를 AI에 활용했고, AI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아나돌은 무엇을 창작한 것일까.
MoMA의 소장은 그의 작업이 미술관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품이 무엇을 표현했고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는지는 소장 여부만으로 알 수 없다. 미술관이 《Unsupervised》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작품을 본 비평가는 무엇을 문제 삼았는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MoMA는 계속 변하는 작품을 어떻게 다뤘나
2022년 MoMA 로비에 설치된 《Unsupervised》는 한 편의 영상을 정해진 순서대로 반복 재생하지 않는다. 아나돌과 그의 스튜디오가 미술관의 소장품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AI 모델이 이미지를 계속 생성하고, 로비의 빛과 움직임, 소리, 바깥 날씨도 화면과 음향에 영향을 준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 서는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른 장면을 보게 된다.
MoMA는 전시를 소개하며 ‘기계가 미술관의 소장품을 본다면 무엇을 꿈꿀까’라고 물었다. 아나돌은 이미 알려진 작품의 모습을 화면에 차례로 띄우는 대신, 그 작품들의 데이터를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재료로 삼았다. 화면에서 관람객이 마주하는 것은 개별 소장품보다 미술관이 축적한 자료에서 생성된 색과 형태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MoMA의 큐레이터 미셸 쿠오(Michelle Kuo)는 아나돌이 현대미술의 역사를 시각화하고 움직이는 이미지로 만드는 여러 방식을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쿠오의 설명에 따르면 《Unsupervised》는 소장품을 다시 소개하는 전시가 아니라, 미술관의 기록을 다른 형태로 경험하게 하는 시도다. 이 설명은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작품 해석이며, MoMA가 소장을 결정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힌 자료는 아니다.
아나돌이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을 매번 직접 그리거나 고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자료를 사용할지, 전시장 환경을 이미지에 어떻게 반영할지, 관람객이 결과를 어떤 규모와 소리로 만나게 할지는 아나돌과 제작진이 결정했다. AI가 개별 이미지를 생성하는 동안, 작가는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관람객에게 제시되는 조건을 설계했다.
MoMA의 소장품 목록에는 맞춤형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색과 소리, AI를 활용한 생성 알고리즘이 작품의 매체로 기재돼 있다. 미술관이 기록한 작품은 어느 한 순간의 화면에 한정되지 않는다. 변화하는 이미지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와 프로그램도 작품을 이루는 요소다.
아나돌은 MoMA의 소장품으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이미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화면에서 색과 형태가 바뀌는 동안, 그 재료가 된 작품들의 역사와 의미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Unsupervised》를 향한 비판은 이 지점에 집중됐다.
MoMA가 전시한 작품, 비평가는 무엇을 문제 삼았나
미술 비평가 벤 데이비스(Ben Davis)는 미술 전문매체 아트넷 뉴스(Artnet News)에 실은 비평에서 《Unsupervised》가 보는 즐거움을 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MoMA가 내세운 ‘미술사의 새로운 상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썼다. 여러 작품의 색과 형태를 새로운 이미지로 결합할 수는 있지만, 원래 작품들이 만들어진 시대와 사회적 맥락은 그 과정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소장품 데이터로 새로운 화면을 만드는 일과 소장품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는 일을 구분했다.
두 작품에서 비슷한 색을 찾아냈다고 해서 그 작품들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AI가 발견한 시각적 관계가 미술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려면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도 살펴야 한다. 데이비스가 문제 삼은 것은 AI의 이미지 생성 능력이 아니라, 아나돌이 선택한 MoMA의 자료가 작품 안에서 어떻게 다뤄졌는가였다.
아나돌이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다. 그는 AI의 사회적 영향을 비판하는 예술도 중요하지만, 자신은 이 기술이 회화의 재료와 표현 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탐색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점에서 《Unsupervised》는 소장품 하나하나의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보다, 방대한 미술관의 기록을 움직임과 색으로 경험하게 하는 작품에 가깝다.
새로운 표현 방식에 주목하는 일과 그 표현의 재료가 된 소장품의 의미를 따져보는 일은 함께 가능하다. 쿠오가 설명한 가능성과 데이비스가 지적한 한계 역시 같은 작품을 놓고 제기됐다. MoMA의 소장은 《Unsupervised》를 미술관의 작품으로 받아들인 결정이지만, 그 결정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AI가 개별 이미지를 생성하는 동안 작가는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관람객에게 제시되는 조건을 설계했다. 소장품 데이터로 새로운 화면을 만드는 일과 그 소장품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는 일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MoMA 밖에서도 이어진 아나돌의 작업
아나돌은 MoMA 전시 이전부터 여러 장소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2019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외벽에 선보인 《서울해몽》을 통해 그의 작업을 접할 수 있었다. 서울과 DDP에 관한 자료를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였으며, 2021년 《서울해몽Ⅱ》에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이미지 600만장과 자연·생태 사진 1만1000여장이 쓰였다.
2025년에는 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에서 《Living Architecture: Gehry》를 발표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작업과 관련된 이미지와 스케치, 설계도 등을 AI 모델에 활용해 변화하는 영상과 소리로 구성한 작품이다. 서울의 공공 공간과 뉴욕·빌바오의 미술관에서 이어진 활동을 보면 아나돌의 작업은 MoMA의 한 차례 전시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도시의 이미지와 미술관의 소장품, 건축 자료를 다루며 여러 나라의 관객과 만났다.
아나돌이 공동 설립한 AI 예술 미술관 데이터랜드(DATALAND)는 2026년 로스앤젤레스에 문을 열었다. 그동안 다른 곳에서 자료를 작품으로 바꾸어 왔다면, 이곳에서는 AI 예술을 위한 공간을 직접 마련하고 열대우림의 생태 자료를 개관 전시의 재료로 선택했다.
12억개 이상의 생태 데이터는 열대우림의 무엇을 보여주는가
데이터랜드의 개관 전시 《Machine Dreams: Rainforest》에는 연구기관과의 협력,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모은 생태 자료가 쓰였다. 데이터랜드에 따르면 중심 전시 공간은 12억개 이상의 생태 데이터 포인트를 활용하며, 열대우림에서 새로 들어오는 환경 정보에 따라 영상이 달라진다. 관람객의 움직임과 심박도 영상과 소리의 변화에 반영된다. 이 수치는 완성된 이미지가 12억개 이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작품에 활용하는 데이터 포인트의 규모를 가리킨다.
아나돌은 연구기관 등과 협력해 자료 사용에 필요한 허가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자료의 출처와 사용 권한은 AI 작품을 살펴볼 때 중요한 정보다. 다만 자료를 어떤 경로로 확보했는지와 그 자료로 무엇을 표현했는지는 각각 살펴야 한다.
데이터랜드를 방문한 한 비평가는 전시가 열대우림의 모습과 소리를 풍부하게 보여주지만,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처럼 그 생태계를 위협하는 현실은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연을 다룬 모든 작품이 환경 문제를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열대우림의 방대한 자료를 작품의 토대로 삼았다면, 그 자료 가운데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는지도 평가할 수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새로운 이미지로 바꿀 수 있어도 원래 자료의 맥락과 의미까지 자동으로 담아내지는 못한다. 작가가 어떤 자료를 택하고 무엇을 배제했는지가 바로 비평의 시작점이다.”
MoMA의 소장품과 열대우림의 생태 자료는 서로 다르지만, 두 작품에 대한 비평은 공통된 지점을 짚는다. AI는 많은 자료를 새로운 이미지로 바꿀 수 있어도 원래 자료의 의미를 그대로 옮겨 주지는 않는다. 아나돌은 자료를 고르고 작품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계한다. 그의 역할이 그 선택에서 드러나는 만큼, 작품이 보여준 것과 다루지 않은 것 역시 비평의 대상이 된다. 어떤 자료에서 출발해 어떻게 바꾸었고 관람객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AI 작품을 읽는 일은 화면을 누가 직접 그렸는지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질문까지 이어진다.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미술시장과 예술금융, 문화예술산업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예술시장의 접점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