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제기된 인공지능(AI) 개발 속도 조절론이 오히려 선두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굳히고 후발 업체의 추격을 막을 수 있다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 공영라디오 엔피알(NPR)는 9월 23일 주요 AI 기업의 개발 동결 논쟁을 보도했다.
AI 개발 동결이 후발 업체에 미칠 영향
앤트로픽(Anthropic) 최고경영자(CEO) 다리오 아모데이, 오픈AI(OpenAI) 임원 샘 올트먼(Sam Altman), 스페이스XAI(SpaceXAI) 소유주 일론 머스크,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 수장 데미스 허사비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CEO 사티아 나델라는 AI 발전 속도를 늦추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혀왔다. 다만 속도 조절의 방식과 범위에 대해서는 공통된 구상이 없는 상태다. 이들은 자율 AI 에이전트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거나 민간 기업을 해킹할 수 있다는 우려와 AI 연구소 전·현직 직원들의 경고 속에서 AI 발전 속도를 늦추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중소 AI 기업들은 일괄적인 개발 동결이 이미 가장 많은 연산 자원과 자본, 유통망을 확보한 프런티어 연구소의 우위를 고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랍에미리트가 지원하는 오픈소스 AI 개발기관 ‘파운데이션 모델 연구소’의 연구과학자 데이비드 벨러미는 산업 전체가 멈추면 현재 가장 강력한 모델을 가진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연구소의 모델이 오픈AI와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보다 약 6개월 뒤처져 있다며, 격차가 유지되면 두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시점에 경쟁이 더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이었던 알바로 베도야도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경쟁업체를 제품과 서비스 품질로 맞설 수 없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의 공동 동결 가능성
퍼플렉시티(Perplexity)는 기업이 시장 지위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규제받기를 요구할 때는 회의적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코히어(Cohere) 공동창업자 닉 프로스트는 민간 기업들이 협의한 포괄적 개발 속도 조절은 중립적인 안전 정책이 아니라, 이미 컴퓨팅 자원·자본·유통망을 갖춘 소수 연구소의 이점을 고정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AI 제품 이용자 4명은 최근 앤트로픽, 오픈AI, 구글(Google), 스페이스XAI가 개발 속도를 늦추기로 불법 담합했다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이 합의가 반독점법을 위반하고 유료 AI 서비스의 개선을 늦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중국과의 협력 문제로도 이어진다. 개발 동결 반대론자들은 미국이 속도를 늦추는 사이 중국 기업이 앞설 수 있다고 우려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가 통제를 벗어나 인류를 위협한다는 우려가 과장됐다면서 개발 동결로 이익을 보는 곳은 중국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수전 라이스는 미국과 중국이 새 모델의 훈련과 출시를 중단하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모데이 CEO는 세계적 속도 조절에는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어떤 합의든 검증 수단을 갖추거나 위반해도 군사적으로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썼다. 양국 간 합의가 이뤄져도 중국의 준수를 어떻게 확인할지가 남는 쟁점이다. 엔피알은 앤트로픽이 자사에 재정 지원을 한다고 함께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