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초짜리 칼 세이건 목소리, 페이스북에서 270만회”…루마 AI, 광고 빌미 저작권 침해 피소

Man gesturing beside a planetary model in an astronomy-filled study
An astronomy enthusiast discusses the universe beside a tabletop planetary model and a shelf of scientific books.
기사 목차 펼치기 / 접기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저작권 분쟁이 AI 학습 데이터에서 광고와 마케팅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천문학자 고(故) 칼 세이건(Carl Sagan)의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회사가 AI 영상 생성 기업 루마 AI(Luma AI)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루마 AI가 자사 AI 모델을 광고하면서 1980년 다큐멘터리 ‘코스모스(Cosmos: A Personal Voyage)’에서 세이건이 말하는 장면을 허락 없이 가져다 썼다는 이유다.

특히 문제가 된 분량은 약 8초다. 짧은 복제는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 ‘경미한 이용(de minimis use)’에 해당할 수 있다는 루마 AI 측 주장과, 길이가 짧더라도 세이건을 상징하는 유명한 표현을 상업 광고의 핵심으로 사용했다면 침해라는 유족 측 주장이 맞붙게 됐다.

AI 소송 정보 플랫폼 ‘챗지피티이즈이팅더월드 (ChatGPT is Eating the World)는 8월31일 루마 AI가 문제의 사용을 ‘드 미니미스(de minimis, 특정 수준 이하로 경미해서 법률적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뜻)’라고 주장했다는 점에 주목해 이 사건을 소개했다. 이 매체가 함께 공개한 소장 원문에 따르면, 이 분쟁은 단순히 AI가 무엇을 학습했느냐가 아니라 AI 기업이 다른 사람의 저작물과 유명인의 정체성을 제품 광고에 어디까지 가져다 쓸 수 있는지를 직접 문제 삼고 있다.

“사과파이를 만들려면 먼저 우주를 발명해야 한다”

세이건의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드루얀-세이건 어소시에이츠(Druyan-Sagan Associates)는 8월25일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지방법원에 루마 AI를 상대로 소송(Druyan-Sagan Associates, Inc. v. Luma AI, Inc., 2:26-cv-09474)을 제기했다. 연방 법원 사건기록을 정리한 저스티아에 따르면 원고는 저작권법 제501조에 따른 저작권 침해 등을 주장했다.

실제 소장에는 세 가지 청구가 담겼다. 저작권법(Copyright Act) 제501조에 따른 저작권 침해, 랜햄법(Lanham Act) 제43(a)조에 따른 허위 보증(false endorsement)·상표권 침해, 보통법상 불공정경쟁이다.

분쟁의 대상은 1980년 11월23일 방영된 ‘코스모스’ 제9화 ‘별들의 삶(The Lives of the Stars)’이다. 소장에 따르면 이 에피소드는 1980년 11월3일 미국 저작권청에 등록됐으며 등록번호는 PA0000146361이다.

세이건은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부터 사과파이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우주를 발명해야 한다(If you wish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 you must first invent the universe)”고 말했다. 루마 AI가 AI 영상 생성 모델 ‘레이 3.14(Ray3.14)’를 홍보하면서 사용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루마 AI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레이 3.14는 지난 1월 공개된 AI 영상 생성 모델로, 네이티브 1080p 영상 생성과 기존 레이3 대비 빠른 생성 속도 등을 내세운 제품이다.

8초지만 페이스북에서 270만회

문제는 단순히 세이건의 말을 글자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원고 주장에 따르면 ‘코스모스’에 담긴 실제 녹음물을 광고에 이용했다는 데 있다.

소장에 따르면 루마 AI는 해당 광고를 링크드인, 유튜브, 인스타그램, 엑스(X), 페이스북 등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배포했다. 소송이 제기될 당시 페이스북에서만 광고 조회 수가 270만회를 넘어섰다고 원고는 주장했다.

원고는 세이건의 지식재산을 오랫동안 선별적으로 라이선스해 왔다는 점도 강조한다. 세이건의 목소리와 이미지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광고·후원 등에 이용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이라는 논리다.

분쟁은 지난 2월 이미 시작됐다. 소장에 따르면 드루얀-세이건 측은 2월3일쯤 팬의 제보로 광고를 알게 됐고 루마 AI에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루마 AI는 2월23일쯤 문제의 복제가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정도가 아닌 ‘de minimis’에 해당하며 소비자에게 세이건과 루마 AI 사이의 관계를 혼동시키지도 않는다는 취지로 반박했다고 원고는 주장했다.

그러나 드루얀-세이건 측은 3월9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광고가 계속 게시되자 소송을 냈다. 로이터도 8월25일 세이건의 지식재산권 관리 회사가 문제의 음성 클립을 허가 없이 AI 영상 생성 플랫폼 광고에 이용했다며 루마 AI를 제소했다고 보도했다.

8초면 저작권 침해가 아닐까

이 사건에서 눈여겨볼 쟁점은 ‘8초’라는 길이가 그 자체로 면책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을 담당하는 캘리포니아 중부 연방지방법원이 속한 제9연방항소법원은 저작권 침해에서 de minimis 원칙을 인정한다. 제9연방항소법원이 제공하는 저작권 사건 배심원 지침은 복제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그 복제가 저작권 침해를 구성할 만큼 실질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판례가 2004년 ‘뉴턴 대 다이아몬드(Newton v. Diamond, 388 F.3d 1189)’ 사건이다. 제9연방항소법원 판결은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가 이용한 짧은 음악 샘플에 대해 해당 음악 저작물에서 양적·질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는 점 등을 들어 de minimis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도 “8초밖에 안 된다”는 주장만으로 결론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원고가 문제 삼는 문장은 세이건과 ‘코스모스’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유명한 표현이고, 소장 자체도 이를 세이건과 밀접하게 연결된 상징적인 문구라고 주장한다.

미 연방대법원도 ‘하퍼 앤드 로 대 네이션 엔터프라이즈(Harper & Row Publishers, Inc. v. Nation Enterprises, 471 U.S. 539)’ 판결에서 복제된 분량이 전체 저작물에 비해 많지 않더라도 질적으로 중요한 표현을 가져갔다면 공정이용 판단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법원은 양적인 비중과 별도로 복제된 표현이 원작에서 차지하는 질적인 중요성을 살폈다.

다만 이 판례들이 곧 루마 AI의 패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de minimis 여부와 공정이용(fair use)은 구별되는 법리이고,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실제 광고의 구성과 복제된 부분의 비중, 원저작물과 광고의 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지는 향후 소송에서 가려져야 한다.

저작권만 아니다…“칼 세이건이 AI 제품 보증한 것처럼 보였나”

이번 사건에는 저작권과 별개의 쟁점도 있다. 원고는 루마 AI가 세이건의 유명한 목소리와 표현을 광고에 사용함으로써 마치 세이건 또는 그의 권리자가 루마 AI와 레이 3.14를 지지하거나 승인한 것처럼 소비자가 오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원고는 랜햄법 제43(a)조에 따른 ‘허위 보증(false endorsement)’도 청구했다.

이 부분에서는 제9연방항소법원의 기존 유명인 광고 판례가 중요하다. 가수 톰 웨이츠(Tom Waits)의 독특한 목소리를 모방해 도리토스 광고를 만든 사건에서 제9연방항소법원은 1992년 ‘웨이츠 대 프리토레이(Waits v. Frito-Lay, Inc.)’ 판결을 통해 유명인의 독특한 목소리를 이용해 그 사람이 상품을 보증하는 것처럼 소비자를 혼동시키는 행위가 랜햄법상 허위 보증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웨이츠 사건과 비교해 사실관계에 차이가 있다. 원고 주장대로라면 루마 AI는 세이건과 비슷한 목소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 ‘코스모스’에 포함된 세이건의 음성을 광고에 사용했다.

다만 원고가 별도의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 침해’를 독립된 청구 원인으로 제기한 것은 아니다. 소장에 명시된 청구는 저작권 침해, 랜햄법상 허위 보증·상표권 침해, 보통법상 불공정경쟁이다. 세이건의 목소리와 인격적 정체성의 상업적 가치가 사건의 중요한 배경이지만 이를 별도의 퍼블리시티권 청구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AI ‘학습’ 아닌 AI ‘광고’에서 터진 저작권 분쟁

이번 사건은 최근 생성형 AI 저작권 소송의 주류와 성격이 다르다. 작가·언론사·음악가들이 AI 기업을 상대로 제기해 온 상당수 소송은 저작물을 AI 모델 학습 데이터로 복제하거나 수집하는 행위가 저작권을 침해하는지를 다툰다.

세이건 사건에서 직접 문제 된 것은 학습 데이터가 아니다. AI 기업이 완성된 제품을 판매하고 홍보하는 과정에서 기존 저작물을 광고 소재로 가져다 썼다는 주장이다.

이 차이는 법적으로 중요하다. AI 학습 소송에서는 대규모 데이터 분석의 변형적 성격, 모델이 원저작물을 대체하는지, 학습을 위해 저작물을 복제할 필요가 있었는지 등이 논쟁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반면 기존 저작물의 식별 가능한 부분을 제품 판매를 위한 광고에 그대로 이용했다면 상업적 목적이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연방대법원도 ‘캠벨 대 어커프-로즈 뮤직(Campbell v. Acuff-Rose Music, Inc.)’ 판결에서 상업성만으로 공정이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상업적 성격은 저작권법 제107조의 공정이용 판단 요소 가운데 하나다. 연방대법원 판결문에 나타난 이 원칙 역시 향후 루마 AI가 공정이용 항변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경우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루마 AI의 기업 규모도 작지 않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공식 발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지원하는 AI 기업 휴메인(HUMAIN)이 주도한 시리즈C 투자에서 9억달러(약 1조2300억원)를 조달했다고 밝혔다. 당시 기업가치는 40억달러(약 5조4700억원)를 넘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 때문에 이번 소송은 AI 기업의 저작권 위험이 모델 개발과 데이터 수집 단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생성형 AI를 개발하는 기업도 제품 광고에서 기존 영상·음악·음성·유명인의 정체성을 이용한다면 일반 광고주와 마찬가지로 사전에 필요한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세이건 사건은 단 8초의 콘텐츠가 어느 지점부터 법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복제가 되는지를 두고 법률적인 다툼이 벌어지게 된다. 법원이 판단할 것은 시간의 길이만이 아니다. 복제된 부분을 일반인이 원작으로 알아볼 수 있는지, 원작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됐는지, 그리고 유명인의 목소리가 상품 보증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이 함께 쟁점이 될 전망이다.

Q&A

Q1. 8초만 사용했는데도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나.

그렇다. 미국 저작권법에 ‘몇 초 이하이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일률적인 기준은 없다. 제9연방항소법원의 판례는 de minimis 여부를 판단할 때 복제된 양뿐 아니라 질적 중요성도 고려한다. 따라서 8초라는 시간 자체만으로 침해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Q2. de minimis와 공정이용은 같은 것인가.

아니다. de minimis는 복제가 저작권법상 문제 삼을 정도로 실질적인지를 따지는 법리다. 공정이용은 저작권법 제107조에 따라 이용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성격, 이용한 분량과 실질성, 잠재적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별도의 법리다.

Q3. 루마 AI가 실제로 공정이용을 주장했나.

현재 확인되는 소장에는 루마 AI가 소송 전 분쟁 과정에서 자신의 사용이 ‘de minimis’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향후 소송에서 공정이용을 정식 항변으로 제기할 수 있지만 현재 단계에서 법원이 이에 대해 판단한 것은 없다.

Q4. 칼 세이건의 목소리 자체에도 저작권이 있는 것인가.

목소리 그 자체와 녹음물에 대한 저작권은 구별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저작권 청구는 ‘코스모스’라는 저작물에 포함된 녹음물을 무단 복제·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원고는 세이건의 독특한 목소리와 정체성을 이용해 그가 루마 AI를 보증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랜햄법상 허위 보증 주장도 제기했다.

Q5. 왜 기존 AI 저작권 소송과 다른가.

직접적인 쟁점이 AI 학습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AI 기업이 자사 제품을 광고하는 과정에서 기존 저작물을 사용한 행위가 문제 됐다. 따라서 AI 학습의 적법성보다는 전통적인 저작권 침해와 광고에서의 유명인 허위 보증 법리가 전면에 등장한다.

RELATED ARTICLES

RECOMMENDED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