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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2300만개 화학 공간을 뒤져 찾아낸 분자가 반추위 미생물의 메탄 생성을 억제했다. 로봇 팔로 수만 개 시험관을 일일이 채우던 전통 제약 연구의 시간표를 획기적으로 앞당긴 AI 신약 발굴(AIDD)의 의미 있는 진전이다. 다만 물질을 투여한 곳은 살아있는 소의 위장이 아닌 시험관 내부였으며, AI가 계산한 물리적 결합 점수와 실제 생체 약효 사이에는 여전히 거대한 과학적 간극이 가로놓여 있다.
시옹 샤(Xiong Xia) 연구진은 네이처 자매 학술지인 ‘npj 바이오필름 앤 마이크로바이옴(npj Biofilms and Microbiomes)’ 2026년 10월 21일 자 공식 논문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동료평가를 거친 이 연구의 핵심 목표는 반추동물의 장내 메탄 생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미지의 신규 억제 분자를 AI 가상 스크리닝 기술로 찾아내는 것이었다.
2300만 화학 공간의 압축… 전통 제약 100배의 AI 스크리닝 생산성
신약 발굴에서 화합물 탐색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 같다. 전통적인 고속 대량 스크리닝(HTS) 방식은 수십억 원의 예산과 자동화 로봇을 투입하더라도 수십만 개 분자를 시험관에 물리적으로 반응시키는 데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실제 유효 물질을 건져 올릴 확률(Hit rate)은 통상 0.01%에서 0.1% 미만에 불과하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화학 공간의 탐색 장벽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메탄 저감 물질 개발을 가로막아 온 핵심 병목이었다.
가상 라이브러리는 인간의 한계를 지우는 거대한 단축키였다.
연구진은 가상 분자 도킹(Molecular Docking) AI 모델을 도입해 이 장벽을 단숨에 돌파했다. 반추위 메탄 생성 고균의 마지막 대사 관문인 핵심 효소 ‘MCR(메틸보조효소 M 환원효소)’의 3차원 입체 결정 구조를 표적으로 설정한 뒤, 화합물 라이브러리 분석을 통해 무려 2300만개에 달하는 방대한 가상 분자 후보군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쏟아부었다. AI 결합 친화도 추정 모델은 단 며칠 만에 2300만개 후보의 도킹 에너지를 계산해 상위 10만개로 압축했고, 연구진의 정밀 구조 검토를 거쳐 1차 체외 시험 대상 26개 화합물을 최종 확정했다.
15.4% 적중률의 명암… 결합 점수는 약효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실험실 검증 결과는 AI 가상 스크리닝의 압도적인 생산성을 입증했다. 소의 반추위 미생물 시료를 72시간 혐기 배양한 1차 시험에서, AI가 추천한 26개 화합물 중 4개가 약물을 녹인 유기용매(DMSO) 대조군 대비 57~76%의 메탄 억제력을 발휘했다. 논문이 제시한 실험 양성률(Hit rate)은 15.4%(26개 중 4개)로, 전통 무작위 스크리닝 대비 100배 이상 높은 경이로운 적중 효율이었다.
열쇠가 자물쇠에 꽂힌다고 문이 저절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15.4%라는 수치는 AI 분자 도킹 기술이 안고 있는 구조적 맹점을 동시에 드러낸다. AI 모델이 학습하고 예측한 값은 ‘분자가 단백질 활성 홈에 얼마나 물리적으로 단단히 달라붙는가(결합 친화도)’일 뿐, 효소의 복잡한 촉매 대사를 마비시키는 ‘기능적 활성 억제력’이 아니었다. 열쇠(분자)가 자물쇠(효소 활성 부위)에 들어맞았더라도 자물쇠를 회전시키지 못하거나 효소 구조를 변형시키지 못하면 실제 화학 반응은 멈추지 않는다. 26개 중 22개의 분자가 시험관에서 무용지물로 탈락한 이유다.
“AI가 계산한 결합 점수는 거대한 화학 공간을 헤쳐 나갈 나침반일 뿐, 시험관의 메탄 억제율이나 동물의 생체 약효를 보증하지 않는다.”
최종 후보 선정 과정에서 인간 연구원의 3차원 결합 자세 검토가 필수적으로 개입한 점도 AI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AI 모델은 방대한 화학 공간을 좁혀주는 훌륭한 필터였지만, 분자의 비틀림 각도나 수소 결합 네트워크의 적합성을 최종 판정한 것은 결국 사람의 생화학적 안목이었다.
단일 단백질과 초복잡계의 충돌… 정적 AI가 놓친 반추위 생태계
연구진은 1차 시험에서 발굴한 유효 물질의 화학 골격을 기반으로 11개의 유사 화합물을 추가 확보해 2차 검증에 돌입했다. 이 심층 최적화 과정을 거쳐 최종 낙점된 핵심 유효 물질이 바로 피페라진 유도체 계열 화합물인 ‘PZON’이다. 연구진은 4개 가축 집단(샹시 육우, 홀스타인 젖소, 진장 육우, 물소)에서 채취한 반추위 미생물 시료에 PZON을 2.95 μM 농도로 투입하고 72시간 동안 배양했다. 시료군별 메탄 저감률 측정 결과, 샹시 육우 시료에서는 95.36%에 달하는 높은 억제율을 보였으나, 홀스타인 젖소 시료에서는 73.15%, 진장 육우 86.02%, 물소 94.38%로 축종과 시료에 따라 22%p 이상의 유의미한 효능 편차가 나타났다. μM은 용액 속 물질의 농도를 나타내는 단위다.
단백질 좌표 하나로 살아있는 생태계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효능 편차가 크게 벌어진 근본 원인은 AI 모델의 ‘정적(Static) 시뮬레이션 한계’에 있다. AI는 컴퓨터 속 단 하나의 고정된 MCR 단백질 결정 구조만 바라보고 점수를 매겼다. 하지만 실제 소의 반추위는 수천 종의 박테리아와 원생동물, 고균이 초 단위로 수소 분압과 발효 산물을 주고받는 거대한 혐기성 공생 생태계다. AI가 단일 단백질과의 결합을 완벽하게 계산했더라도, 복합 미생물 군집의 유기적 피드백과 축종별 사료 섭취 환경을 모델링하지 못하면 배양관 수치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미생물 전사체 분석 결과 고균 군집과 MCR 유전자 발현이 억제된 사실이 확인됐으나, 이것이 직접 결합인지 미생물 생태계 변화에 따른 간접 효과인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다.
상용 제제 8배 열세의 교훈… 알파폴드3와 생성형 AI로의 진화 과제
신약 개발의 현실적인 벽은 기존 치료제와의 정면 대결에서 드러난다. 메탄 생성을 절반(50%) 수준으로 억제하는 데 필요한 반수 억제 농도(IC50)를 측정한 결과, PZON은 0.24 μM, 기존 실험실 표준 억제제인 BES(브로모에탄술폰산)는 0.22 μM이었다. 반면 이미 네덜란드 DSM이 사료 첨가제로 상용화한 합성 물질 ‘3-NOP(3-니트로옥시프로판올, 제품명 보베어)’는 0.03 μM에 불과했다. 논문 보충자료 S4에 명시된 바와 같이, 동일한 시험 조건에서 3-NOP는 PZON보다 무려 8배나 적은 농도로 동등한 메탄 억제 수준을 달성했다. 즉, 농가에서 동일한 효과를 보려면 PZON을 8배 더 많이 먹여야 한다는 경제적 열세를 뜻한다.
실제 축산 현장은 시험관 배양액이 보여주지 못한 복잡한 생체 장벽을 품고 있다.
안전성과 약물성(체내 흡수·분포·대사·배설, ADME) 평가 역시 AI가 넘어야 할 다음 단계다. 사람의 장 유래 세포(Caco-2) 및 소 신장 상피세포(MDBK)를 대상으로 한 초기 독성 시험에서 100 μM까지 유의미한 독성이 없었으나, 논문의 한계점 서술은 세포 실험 결과가 실제 가축 사료로서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했다. 분자가 소화 효소에 분해되지 않고 혈액이나 반추위액 속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생체이용률), 장기 섭취 시 반추동물의 소화율이나 산유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가축 사양 시험(In Vivo)은 단 한 건도 수행되지 않았다. 공식 논문 공시 항목에 기재된 연구진 일부의 메탄 저감 스타트업 공동창업 및 특허 출원 이력도 이러한 상용화 검증의 무게를 더한다.
이번 연구는 AI가 수천만 개 화학 공간에서 유효한 결합 분자를 찾아낼 수 있음을 입증한 중대한 ‘1세대 AI 스크리닝의 이정표’다. 하지만 물리적 도킹 점수에 의존하는 단일 표적 AI 모델만으로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체 약효와 복잡한 미생물 생태계를 온전히 정복할 수 없다. 알파폴드3(AlphaFold 3)와 같은 복합 생체 분자 상호작용 예측 모델, 그리고 생체 안정성과 효소 동역학을 동시에 설계하는 차세대 생성형 AI로의 진화가 절실한 이유다.
결국 AI 바이오의 성패는 컴퓨터 스크린이 아닌 생체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