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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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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이 실제 모델의 모습을 AI로 복제해 광고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모델이 매번 촬영 현장에 참여하지 않아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지만, 사진가와 스타일리스트 등 기존 제작 인력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랐다.
약 1년 반이 지난 2026년 9월 H&M은 런던 패션위크에서 또 다른 AI 활용 사례를 선보였다. 이번에는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과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모델과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영상을 무대에 올렸다.
두 프로젝트 모두 AI를 활용했지만 제작 과정에서 기술이 맡은 역할은 달랐다. 하나는 실제 인물의 모습을 재현해 광고에 활용하는 작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창작자가 만든 이미지를 공연과 연결하는 실험이었다. 같은 브랜드의 두 사례는 AI가 패션 이미지의 제작과 표현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볼 단서가 된다.
실제 모델을 복제하는 AI, 달라지는 광고 제작
H&M이 2025년 발표한 프로젝트는 실제 모델의 외모와 특징을 AI로 재현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을 활용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모델이 매번 촬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광고와 소셜미디어 콘텐츠 등에 사용할 새로운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H&M은 디지털 트윈을 제작하기 위해 실제 모델을 촬영했으며, 당시 30명의 모델을 대상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모델과 소속 에이전시가 참여하고, 디지털 트윈의 권리와 사용 여부를 모델이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제시했다.
같은 해 7월 공개된 첫 공식 이미지에는 사진가 조니 캉가스니에미와 모델 버네사 무디가 참여했다. 디지털 트윈 역시 실제 촬영과 창작자의 작업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이미지를 활용하는 단계에서는 기존 광고 제작과 차이가 나타난다. 패션 광고에는 사진가와 모델뿐 아니라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다양한 인력이 참여하지만, 이미 제작한 디지털 이미지를 여러 콘텐츠에 활용하게 되면 새로운 촬영에 필요한 작업도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촬영이 줄어들 경우 제작 인력의 작업 기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모델의 권리와 보상 역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의 모델 권익단체 모델 얼라이언스(Model Alliance)는 디지털 복제 이미지의 활용에 충분한 동의와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M은 모델이 디지털 트윈의 권리와 사용 여부를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실제 활용 범위와 보상은 개별 계약에서 확인해야 할 문제다.
인물 이미지의 정적 활용을 넘어, 이미지의 변화 과정 자체가 무대의 일부가 됐다.
닉 나이트가 AI와 함께 구현한 패션쇼
2026년 9월 17일 런던 패션위크에서 열린 H&M의 패션쇼 《H&M&YOU&I》는 패션과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무용, 디지털 영상을 결합한 행사였다. 40m 길이의 런웨이에서는 발레리나 잉그리드 실바(Ingrid Silva)가 공연했고, 시각예술가 카린 나카무라(Karyn Nakamura)의 영상 설치 작업과 음악가 래브린스(Labrinth)의 음악이 무대를 채웠다. 전체 행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에는 영국의 패션 사진가 닉 나이트(Nick Knight)와 칼럼 나이트(Calum Knight)가 이름을 올렸다. 닉 나이트는 자신이 설립한 창작 플랫폼 쇼스튜디오(SHOWstudio)와 함께 AI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영상도 선보였는데, 모델과 관객이 움직임을 통해 화면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구성한 작업이었다.
닉 나이트에게 패션 이미지와 디지털 기술의 결합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알렉산더 맥퀸과 존 갈리아노 등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해 온 그는 2000년 쇼스튜디오를 설립한 이후 다양한 디지털 실험을 이어왔다. 2005년에는 온라인 관객이 모델 리버티 로스(Liberty Ross)의 스타일링에 참여하는 《Dress Me Up, Dress Me Down》을 선보이며 관객이 패션 이미지의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을 탐색했다.
이번 패션쇼에서도 기존의 촬영 과정은 유지됐다. 닉 나이트는 모델 알렉스 콘사니(Alex Consani)와 배우 아치 르노(Archie Renaux)를 스튜디오에서 촬영했고, 일러스트레이터 클리프 워너(Cliff Warner)도 실제 모델을 관찰하며 그림을 제작했다. 이후 쇼스튜디오는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에 여러 AI 기술을 적용해 움직이는 영상을 만들었다. 닉 나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쇼스튜디오는 AI를 이용해 이미지를 프레임 단위로 처리하고, 그 움직임과 시각적 변화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제작한 영상은 런웨이 위 모델의 동작에 반응하면서 공연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다. 특히 H&M 스튜디오 컬렉션을 소개하는 구간에서는 클리프 워너의 그림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모델의 움직임에 맞춰 변화했다.
여기서 AI가 모든 이미지를 처음부터 만든 것은 아니다. 실제 촬영과 그림 제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구현하는 데 활용됐으며, 패션쇼의 다른 공연과 설치 작업까지 모두 AI로 제작된 것도 아니다. 닉 나이트는 2026년 9월 《Vogue Business》 인터뷰에서 기존의 사진 촬영 과정을 유지했으며, 인터랙티브 기술을 결합하기 위해 평소보다 큰 제작팀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업에서는 촬영을 대체하기보다 촬영 이후의 제작 단계가 추가된 것으로, AI를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필요한 인력과 협업의 형태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작업은 촬영을 대체하기보다 촬영 이후의 제작 단계를 새롭게 확장한 시도다. AI를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필요한 노동과 협업의 형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완성된 사진이 다시 창작의 출발점이 될 때
관객의 움직임을 작품에 반영하는 시도는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어져 왔다. 2001년 미디어아티스트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가 선보인 《Body Movies》가 대표적인 사례로, 이 작품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그림자에 따라 투사된 인물 사진이 드러나면서 관객의 움직임이 작품을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닉 나이트 역시 오래전부터 관객이 패션 이미지에 참여하는 방식을 실험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패션쇼를 참여형 예술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기존의 작업과 비교해 보면 AI가 창작 과정에 어떤 변화를 더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일반적인 패션 사진은 촬영과 편집을 거쳐 완성된 이미지로 공개된다. 관객은 사진가가 선택한 장면을 감상하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촬영된 사진이 영상 제작의 출발점이 됐고 그 영상은 다시 실제 공연과 연결됐다. 클리프 워너의 그림 역시 고정된 화면을 넘어 움직이는 무대의 일부가 됐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정지 이미지를 움직일 수 있다. 이번 실험에서 주목할 부분은 AI를 활용한 이미지 변형을 현장의 상호작용과 결합했다는 점이다. 사진과 그림을 완성하는 일뿐 아니라, 그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관객에게 전달될지 구상하는 일까지 창작의 범위에 포함된 것이다.
닉 나이트는 자신을 ‘사진가’보다 폭넓은 의미의 ‘이미지 메이커(Image-maker)’로 설명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AI로 기존 사진이나 영화의 표현을 모방하기보다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탐색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태도는 이번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사진을 대신 만드는 기술보다, 매체와 만나 무엇이 될 수 있는지가 화두였다.
“사진과 그림을 완성하는 일에 머물지 않고, 그 이미지가 현장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관객과 상호작용할지 구상하는 전 과정이 새로운 창작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AI가 넓힌 표현의 범위, 남겨진 선택의 문제
H&M의 패션쇼는 독립적인 미디어아트 전시가 아니라 패션 컬렉션을 소개하는 상업적 행사였다. 약 700명의 관객이 참석했고, 일부 상품은 행사 당일 온라인 판매가 시작됐다. 예술가들의 작업 역시 새로운 의상을 보여주고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이번 실험을 상업적 맥락과 분리해 바라보기는 어렵다.
상업적 목적이 예술적 실험의 의미를 지우는 것은 아니다.
패션은 오래전부터 사진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영화감독 등이 협업하며 새로운 표현을 시도해 온 분야이며, 이번에는 그 과정에 AI가 더해졌다. 이처럼 AI는 기존 이미지를 새로운 형태로 표현하는 데 활용될 수 있지만, 그 기술이 창작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작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디지털 트윈으로 모델의 모습을 재현해 새로운 광고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과 닉 나이트의 작업처럼 새로운 제작 단계를 더하는 방식은 필요한 노동과 협업의 형태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모델의 동의와 보상, 사진과 그림의 사용 권리도 그 과정에서 함께 살펴야 할 문제다.
H&M의 두 프로젝트만으로 AI가 예술을 어떻게 바꿀지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두 사례를 통해 AI가 창작 과정의 어느 단계에 활용되는지에 따라 제작 방식과 창작자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닉 나이트의 작업에서도 AI는 사진과 그림을 새로운 형태로 표현하는 데 활용됐지만,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줄지 구상하는 일에는 여전히 창작자의 판단과 여러 제작진의 협업이 필요했다.
AI 이미지가 늘어날수록, 무엇을 표현할지 결정하는 창작자의 자리는 더욱 무거워진다.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미술시장과 예술금융, 문화예술산업이며, 최근에는 AI와 예술시장의 접점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