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젊은 구직자들이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보는 사무직과 창작 분야를 떠나 제본, 금속 세공, 보트 제작 등 전통 수공예로 향하고 있다고 더 가디언이 보도했다. 대학 졸업장이 안정적인 경력을 보장하던 흐름이 흔들리면서 손기술과 전문 지식이 필요한 직업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내용이다.
더 가디언(The Guardian)은 8월 27일 AI가 회계·소프트웨어 개발·초급 법률 업무를 비롯해 미술, 글쓰기, 디자인까지 빠르게 자동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생성형 AI는 예술 작품과 긴 글, 복잡한 디자인 기획을 수초 만에 만들어내면서 신입 노동자가 진입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압박하고 있다.
정치학을 전공한 27세 에린 롤리는 디지털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경력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판단해 영국 슈롭셔의 러들로 북바인더스에서 제본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다. 제본의 핵심 기법은 수세기 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으며, 작업 대부분은 빅토리아 시대에 제작된 프레스와 금박 기계, 풀 붓을 이용해 손으로 진행된다. 롤리는 화면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 힘들었고 사람이 직접 만든 물건에 더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러들로 북바인더스의 폴 키드슨 최고경영자는 젊은층의 관심이 급증한 것이 급격히 줄어드는 제본업의 명맥을 잇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손으로 작업하는 제본사는 현재 50명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1950~1970년대 이후 훈련이 줄었고 1980년대 초 정식 견습 제도가 무너진 뒤 업계 교육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관련 과정이 거의 없어 대량 채용 대신 자체적으로 인력을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공예 제품을 찾는 상업적 수요도 이어지고 있다. 고급 출판사 폴리오 소사이어티는 러들로와 함께 ‘왕좌의 게임’ 한정판을 내놓았으며, 창작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예술 분야를 지원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예술 금속 세공업체 콕스 런던은 지난해 견습 제도를 시작했고, 올해 견습생 2명 모집에 160건이 넘는 지원서를 받았다. 공동창업자 니콜라 콕스는 손으로 만든 작품에 인간의 흔적과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점이 사람들이 수공예를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견습생들은 AI를 완전한 대체재라기보다 작업을 바꾸는 도구로 보는 시각도 내놨다. 콕스 런던의 럭키 에머슨은 독창성을 원하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예술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고 했고, 나지파 타바숨은 기술이 가치를 더하는 지점에서는 AI를 활용하되 숙련된 수작업의 만족과 가치는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런던 국립극장도 IT뿐 아니라 전통 가발 제작, 의상·소품 제작, 금속 세공을 포함한 기술 견습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기술 자격 담당자인 캐스 거티는 금속공들이 모두 50대 이상이고 가발 제작 기술도 사라질 위기에 있어 자체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립극장은 견습 과정에 AI가 생성한 지원서가 대거 접수되는 문제를 겪고 있으며, 캐스 거티는 과거 지원자 100명이면 인기 과정으로 여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