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AI 개발을 멈추기보다 기술이 바꿀 교육·노동·보상 체계와 사회계약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10월 6일 대한민국 정부에 실린 기고에서 AI의 장기적 위험을 이유로 개발을 중단하자는 주장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AI 개발 중단론에 대한 반론
이 교수는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파멸적 위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 훈련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을 언급하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만으로 기술 진보를 인위적으로 멈추자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봤다. 기술 혁신이 노동을 대체하고 성장을 가속해 경제적 특이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맬서스 이후 반복돼 온 서사라는 설명이다. 산업혁명도 지금 돌이켜보면 단절적이라기보다 점진적인 시스템 전환에 가까웠다고 덧붙였다.
기술 발전이 언제나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게 이 교수의 논지다. 윌리엄 노드하우스 등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인용해 혁신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개발 비용이 커지고 난도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시나리오가 이어져도 무한한 가속 성장을 뜻하는 특이점은 최소 100년 뒤에나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소개했다. 2022년 겨울 챗GPT가 대중에 공개된 뒤 4년도 지나지 않은 만큼, 짧은 기간의 데이터만으로 인류의 미래를 단정하고 개발을 멈추는 것은 섣부르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의 과제는 능력주의 재설계
AI가 큰 변화를 일으키더라도 충격은 국가별 자본과 제도, 산업 기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내다봤다.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는 곳에서는 노동 대체도 함께 진행될 수 있지만, 공급망 병목이나 부족한 인프라에 가로막힌 곳에서는 AI의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AI 기술과 상품은 무한히 복제·배포될 수 있고 자본은 압도적인 확장성을 지녀 전통적인 노동의 가치를 낮출 수 있어, 그에 따른 격차는 기존의 정체성 갈등과 다른 물질적 불평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인종이나 정체성보다 능력주의를 뒷받침해 온 교육과 보상 체계의 변화가 주요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국어·수학·영어를 중심으로 한 교육은 언어·기호 처리 능력에 보상을 연결해 왔지만, 생성형 AI는 언어 능력과 규칙 기반 문제 해결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교육 모델과 직업 보상 체계가 전환점에 놓였으며, 기존 평가 기준만으로 미래세대의 역량과 기여를 가늠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AI 개발 중단보다 언어·수리 중심 평가를 넘어서는 사회적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데 먼저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능력주의의 변화가 새로운 계층 고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이동성을 보장하고, AI 시대에 생기는 부가 특정 계층에 쏠리지 않게 다층적인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을 인위적으로 멈추기 어렵다면 그 충격을 흡수할 새로운 사회계약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