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루이스(Peter Lewis)는 AI 자체보다 기술의 방향을 시민이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민주주의에 더 큰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가디언(The Guardian)은 10월 13일 루이스의 기고를 게재했다.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맞서는 시민들
루이스는 기술 발전을 이미 정해진 미래처럼 제시하는 ‘불가피성 교리’가 시민을 의사결정에서 배제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기술업계가 안전장치를 줄이고 AI 개발을 가속해야 한다는 현실을 만들고 있으며, 호주 정부도 혼란스러운 국제 환경에서 통제력을 행사하려면 AI 산업에 올라타야 한다는 전략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호주가 재생에너지로 사막의 대형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고 AI 서비스를 수출 산업으로 키우려는 구상에도 이런 논리가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루이스는 이 선택이 노동자·창작자·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고 협상할 기회를 좁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지적한 AI 산업의 위험은 일자리 대체와 창작물 무단 학습에 그치지 않는다. 규제 없이 기술을 도입하면 특히 전쟁 현장에서 심각한 피해를 낳을 수 있고,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에너지와 물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AI 개발자들조차 기술이 인류를 파괴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고 루이스는 덧붙였다. 그는 이런 비용과 위험을 공개적으로 따지는 대신 “어쩔 수 없다”며 수용하라는 분위기가 반발을 키운다고 봤다.
호주에서 드러난 반발 사례
루이스는 호주에서 시민과 창작자, 지역사회가 AI와 데이터센터 확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겟업(GetUp)의 캠페인으로 콜스(Coles)와 데이터 기업 팔란티어(Palantir)의 제휴가 비판받은 사례를 들었다. 팔란티어가 어린이를 폭격하는 미군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이민 당국에는 개인 추적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는 점이 논란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이 AI 모델 학습에 쓰여 미래의 일자리와 수입을 위협한다며, 과거 이용을 보상하고 앞으로의 활용 조건을 직접 정할 수 있는 체계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이스는 호주 통신회사 텔스트라(Telstra) 이후 최대 규모의 증시 상장으로 기대를 모았던 데이터센터 기업 퍼머스(Firmus)의 기업공개(IPO)가 무산된 일도 지역 반발을 보여주는 사례로 들었다. 시드니 데이터센터 사업이 주민 반대에 부딪혀 철회된 뒤 상장 계획이 접혔으며, 그는 입찰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데이터센터 확장에 대한 반감도 투자 전망을 고민하게 했을 것이라고 봤다. 미국에서는 좌우 진영이 데이터센터 확대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호주 의회에서는 앞으로 몇 주 동안 개인정보 보호 개혁과 디지털 주의 의무, 데이터센터 기준, 정부의 시민 대상 AI 활용 규칙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직장에서는 AI 사용과 감시, 일자리 대체 문제를, 학교와 일상에서는 AI 도구를 쓸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루이스는 내다봤다. 그는 기술기업이 시민의 피로와 무관심을 기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AI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시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이스는 전략 커뮤니케이션·조사 업체 에센셜의 비상임 의장이자 팟캐스트 진행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