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amsung Electronics)와 SK하이닉스(SK Hynix)가 미국 AI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메모리칩 시장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회사가 세계 메모리칩 시장의 83%를 차지한 가운데, 레스트오브월드는 9월 28일 미국 AI 인프라 수요를 겨냥한 양사의 경쟁을 보도했다.
HBM 주도권 놓고 협력 확대
고대역폭메모리(HBM)는 AI 프로세서가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읽고 쓰도록 지원하는 메모리로, AI 모델의 학습과 구동에 쓰이는 대형 시스템의 핵심 부품이다. SK하이닉스는 핵심 기술을 앞서 확보하고 엔비디아(Nvidia)에 일찍 공급하면서 HBM 시장에서 우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지난 1년간 시장 점유율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리며 SK하이닉스의 거래 물량을 가져왔고, 엔비디아와 오픈AI(OpenAI)와의 협력도 추진했다.
양사의 미국 사업 확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40억달러 규모의 첨단 패키징 시설을 짓기로 하고 8월 착공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2025년 3월 엔비디아와 AI를 이동통신 기지국·네트워크 장비에 적용하는 AI-RAN 기술 개발에 협력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SK하이닉스와 함께 오픈AI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한국 내 엔비디아 GPU 26만개 배치 계획에서 삼성전자는 약 5만개를 배정받았다.
공급 능력과 중국 사업 변수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의 크리스토퍼 밀러(Christopher Miller) 국제사 교수는 기술 선도 여부뿐 아니라 생산 능력도 중요해졌다고 레스트오브월드에 말했다. 메모리 업계 전반의 생산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은 고객사와의 계약과 장기 계약을 활용해 HBM 제품을 고객 요구에 맞게 더 특화하려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범용 제품 중심이던 메모리 사업이 맞춤형 제품 공급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공급 배정이 HBM 시장 점유율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독립 연구기관 로디엄그룹의 벤 레이놀즈(Ben Reynolds) 선임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베라 루빈 공급사로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얼마나 가져오느냐가 경쟁력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AMD와 브로드컴 등 다른 AI 칩 업체와의 관계 구축도 점유율 확대의 기회로 꼽았다. 삼성전자 한국 내 모든 직원과 전 세계 디바이스경험 부문 직원에게 챗GPT(ChatGPT) 엔터프라이즈와 코덱스(Codex)를 제공한 오픈AI는 2026년 6월 이를 대규모 도입 사례 중 하나라고 설명했고, 같은 해 9월 삼성전자와 차세대 칩 협력을 발표했다.
양사는 미국 사업을 키우는 동시에 중국에 기존 생산시설을 두고 있어 미중 갈등의 영향도 받고 있다. 미국은 2025년까지 적용되던 검증된 최종사용자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중국 내 공장에 수출 통제 대상 장비를 반입하려면 매년 허가를 받도록 바꿨다. 중국 시장은 세계 시장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현지 업체의 기술 발전과 대체 공급자의 등장으로 사업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레이놀즈와 밀러는 지적했다. 카운터포인트의 황 애널리스트는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지 기술이 발전하면 시장 지배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