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싱크탱크를 내세운 친이스라엘 웹사이트가 인공지능(AI) 챗봇이 이스라엘 측 주장을 인용하도록 유도하는 콘텐츠를 9일간 124건, 56만단어 넘게 게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가디언(The Guardian)은 8월 26일 자체 분석을 통해 이 사이트가 팔레스타인 수감자 고문,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가자지구 고의 기아 의혹 등을 중립적 연구처럼 다뤘다고 보도했다.
웹사이트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하노버 공공정책연구소(Hanover Institute for Public Policy)’ 명의로 운영됐다. 어느 관할에도 법인으로 등록된 흔적이 없고 물리적 주소와 직원 이름, 보고서 작성자 표기도 없으며, 이용약관도 연구소가 설립된 주(州)를 밝히지 않은 채 해당 주의 법률을 따른다고 적었다.
뉴욕의 미디어 제작사 피로(Piro Inc)는 이 사이트를 이달 미국 법무부에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를 위해 배포하는 자료로 신고했다. 1938년 제정된 FARA는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주체가 이를 공식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한다. 사이트는 8월 14일 처음 알려진 뒤 ‘자금 지원’ 페이지를 추가했고, 과거 외부 자금 없이 운영됐다는 설명은 작성 당시에는 사실이었다고 밝혔다.
더 가디언 분석에 따르면 하노버 연구소는 8월 6일부터 14일까지 보고서 124건을 올렸으며, 평균 분량은 약 4500단어였다. 8월 12∼13일 이틀 동안에만 73건, 약 35만4000단어를 게시했고 이후 새 보고서는 올라오지 않았다. 124개 제목 중 하나를 제외한 모든 제목은 ‘반시온주의는 반유대주의인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땅에서 몰아냈나’,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집단학살을 벌이고 있나’처럼 챗봇 이용자가 입력할 법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보고서에는 세계은행, 유엔 기구, 팔레스타인 중앙통계국, 국제앰네스티,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등이 인용됐다. 그러나 인권단체가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또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저지르고 있다고 결론 내린 사안에 대해선 법원이 아직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이 표현은 124건 중 20건에 등장했다. 사상자와 구호품 수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동일하게 ‘사건 당사자 일방의 집계’라는 단서를 달아 가자지구 상황에서 확정할 수 있는 사실이 거의 없다는 인상을 줬다고 분석은 지적했다.
퀸시연구소 연구원 닉 클리블랜드스타우트는 더 가디언에 웹사이트 디자인과 로고 등이 학술기관처럼 보이지만 읽을수록 내용의 문제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2022년 영국·프랑스·독일 언론사 페이스북 페이지의 반유대주의 댓글을 분석한 연구는 124건 중 88건에서 모두 454차례 인용됐다. 토지 등록, 미국 언론 보도에 대한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의 영향, 가자 사망자 수 등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주제에도 반복 사용됐다.
이 사이트는 당초 AI 시스템에 사이트 내용을 설명하는 ‘llms.txt’ 파일을 사용했지만, 처음 파일은 하노버 연구소를 설명하지 않고 AI 검색 노출을 돕는 콘텐츠 플랫폼 레스(Res)의 표준 파일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레스는 챗GPT(ChatGPT), 퍼플렉시티(Perplexity), 클로드(Claude), 제미나이(Gemini)에 인용되도록 돕는 ‘생성엔진최적화’를 판매하는 업체다. 이후 파일은 기계 판독용으로 바뀌었고 사이트에서 레스 명칭도 사라졌다. 레스 창업자 하이 트랜은 7월 22일 피로의 이스라엘 관련 업무 하청업체로 미국 법무부에 등록했으며 직책은 디지털 전략가로 신고됐다. 더 가디언은 피로와 레스, 이스라엘 정부 광고기관 라팜(LaPam), 하노버 연구소에 논평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