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인공지능(AI) 학습을 위한 저작물 이용이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하는지를 처음 판단해 저작권자인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이번 판결은 챗GPT(ChatGPT) 같은 생성형 AI가 아니라 법률정보 서비스 웨스트로(Westlaw)와 경쟁하는 비생성형 AI 법률검색 서비스에 관한 것이다.
미국 제3연방항소법원은 9월 29일 톰슨 로이터 엔터프라이즈 센터 대 로스 인텔리전스 사건(Thomson Reuters Enterprise Centre GmbH v. ROSS Intelligence Inc., No. 25-2153)에서 AI 법률검색 스타트업 로스 인텔리전스(ROSS Intelligence, 로스)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톰슨 로이터 측에 내려진 약식판결을 유지했다.
로이터는 9월 29일 “제3연방항소법원이 로스의 AI 법률검색 엔진 학습에 웨스트로의 저작권 자료를 사용한 것은 공정이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번 결정을 AI 학습과 관련한 저작권 문제를 다룬 최초의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결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그러나 “이 사건이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다루진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번 판결은 생성형 AI의 책·기사·이미지 학습에 관한 판단까지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웨스트로는 법률정보 DB, 로스는 AI 법률검색 서비스
웨스트로는 글로벌 정보·미디어 기업 톰슨 로이터가 운영하는 법률정보·리서치 데이터베이스다. 미국 판례와 법령, 법률자료 등을 검색할 수 있어 변호사와 법률가들이 이용한다.
이번 소송에서 문제가 된 ‘헤드노트(headnote)’는 웨스트로 편집자가 판례의 주요 법률 쟁점을 요약·정리한 자료다.
로스는 자연어로 법률 질문을 입력하면 관련 판례를 찾아주는 AI 법률검색 서비스를 개발한 스타트업이었다. 웨스트로 같은 기존 법률 리서치 서비스와 경쟁하는 제품을 개발했다.
분쟁은 톰슨 로이터가 2020년 로스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톰슨 로이터는 로스가 웨스트로 헤드노트에서 파생된 자료를 AI 법률검색 엔진 학습에 이용해 경쟁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1심인 델라웨어 연방법원의 스테파노스 비바스(Stephanos Bibas) 판사는 2025년 2월 약식판결에서 2200개가 넘는 웨스트로 헤드노트에 대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고 로스의 공정이용 항변을 배척했다.
미국 저작권법 제107조의 공정이용은 이용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성격, 이용한 부분의 양과 중요성, 원저작물의 잠재적 시장이나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 네 가지 요소를 종합해 판단한다.
당시 비바스 판사는 특히 이용 목적과 시장 영향을 로스에 불리하게 판단했다. 그는 “로스가 경쟁 법률 리서치 도구를 더 쉽게 개발하기 위해 헤드노트를 가져갔다“고 밝혔다. 또 “로스의 이용 목적이 웨스트로의 목적과 매우 유사하다”고 했다.
판사는 “로스가 헤드노트를 최종 사용자에게 그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공정이용이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판결문에는 저작물의 이용 목적과 로스 제품이 웨스트로의 잠재적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이 담겼다.
특히 비바스 판사는 자신의 판단을 생성형 AI까지 확대하지 않았다. 그는 판결문에서 “오늘 내 앞에는 비생성형 AI만 있다”고 명시했다.
로스는 이 판단에 불복했다. 비바스 판사는 2025년 5월 중간항소 허가 결정에서 공정이용과 저작권 보호 범위에 항소심 판단을 받을 법적 쟁점이 있다고 인정했다. 제3연방항소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톰슨 로이터의 승소 판단을 유지했다.
로이터는 9월 29일 “로스가 소송 비용을 이유로 2021년 서비스를 폐쇄했다”고 보도했다.
생성형 AI에서는 앤트로픽·메타가 공정이용 승소
생성형 AI를 다룬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에서는 로스 사건과 다른 판결이 나왔다.
윌리엄 알섭(William Alsup) 판사는 2025년 6월 바츠 대 앤트로픽 사건(Bartz v. Anthropic PBC, No. 3:24-cv-05417) 약식판결에서 생성형 AI 클로드(Claude)를 개발하는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이 합법적으로 취득한 책을 이용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학습한 행위 자체는 공정이용이라고 판단했다.
알섭 판사는 AI 학습을 “대단히 변형적이었다(spectacularly transformative)”고 평가했다. 책을 독자에게 그대로 제공하기 위한 복제가 아니라 LLM을 훈련하는 데 이용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앤트로픽이 불법 복제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책을 중앙 라이브러리에 축적한 행위에는 같은 판단을 적용하지 않았다. 법원은 LLM 학습과 저작물을 불법으로 취득해 영구적인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행위를 별도로 판단했다.
같은 법원의 빈스 차브리아(Vince Chhabria) 판사는 카드리 대 메타 플랫폼스 사건(Kadrey v. Meta Platforms, Inc., No. 3:23-cv-03417) 약식판결에서도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이자 생성형 AI 라마(Llama)를 개발하는 메타 플랫폼스(Meta Platforms)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차브리아 판사는 생성형 AI 학습 전체를 일반적으로 공정이용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원고들이 시장 피해를 뒷받침할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점이 판결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차브리아 판사는 2026년 3월 후속 결정에서도 “메타가 승소한 이유가 저작물을 AI 모델 학습에 이용하는 행위 자체를 일반적으로 공정이용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로스와 두 생성형 AI 사건은 같은 공정이용 법리를 적용했지만 사실관계와 법원이 중점을 둔 요소가 달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로스에서는 저작권자의 법률검색 서비스와 경쟁하는 제품이 문제됐고, 앤트로픽에서는 LLM 학습과 자료의 취득·보관이 구분됐다. 메타 사건에서는 시장 피해에 관한 원고 측 입증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뉴욕 스타인 판사 MDL도 ‘AI 학습은 공정이용인가’ 정면 심리
AI 학습과 공정이용을 둘러싼 또 다른 대형 소송은 뉴욕 남부연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시드니 스타인(Sidney H. Stein) 판사가 담당하는 오픈AI 저작권 침해 통합소송(In re OpenAI, Inc., Copyright Infringement Litigation, No. 1:25-md-03143, MDL)에는 챗GPT 개발사 오픈AI(OpenAI)와 주요 투자·기술협력사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상대로 작가와 언론사들이 제기한 저작권 소송들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는 9월 8일 “오픈AI·마이크로소프트와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등 언론사·작가들이 9월 4일 상호약식판결 신청을 제출하면서 저작권이 있는 책과 뉴스 기사를 허락 없이 AI 모델 학습에 이용하는 것이 공정이용인지에 관한 핵심 법적 다툼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작가들의 저작권과 직업적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인 저작자협회(Authors Guild)는 9월 5일 “원고들은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원고들의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복제했고 그 복제물을 생성형 AI 모델 학습에 이용했다는 점에 대해 약식판결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원고 측은 특히 시장 피해를 전면에 내세웠다. 저작자협회는 원고 측 주장을 소개하면서 “시장 피해를 공정이용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요소”라고 표현했다. 또 “오픈AI의 모델이 인간 작가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작가들의 작품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오픈AI는 뉴욕타임스 소송 설명 자료에서 “AI 모델 학습은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한 인터넷 자료를 AI 모델 학습에 사용하는 행위가 기존 공정이용 판례의 보호를 받는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에서는 저작권이 있는 책과 뉴스 기사를 LLM 학습 과정에서 복제하는 행위의 변형성, 생성형 AI가 원저작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 AI 학습용 라이선스 시장 등이 공정이용 판단의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 판결, 생성형 AI 사건에는 ‘구속력’ 없어
로스·앤트로픽·메타·뉴욕 사건은 모두 미국 저작권법 제107조의 공정이용 법리를 AI 학습에 적용하는 사건이다. 다만 각 사건의 사실관계와 절차적 단계에는 차이가 있다.
로스는 웨스트로와 같은 법률 리서치 시장에서 경쟁하는 제품에 관한 사건이다. 1심은 로스의 이용 목적과 웨스트로의 잠재적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공정이용 판단에서 중요하게 다뤘다.
앤트로픽 사건에서는 모델 학습의 변형성이 인정된 반면 자료를 불법으로 취득해 영구적인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행위에는 별도의 판단이 내려졌다.
메타 사건에서는 원고들이 시장 피해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뉴욕 MDL에서는 책과 뉴스 기사의 복제, LLM 학습의 변형성, 원저작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이 공정이용을 둘러싼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다만 제3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은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스타인 판사를 법적으로 구속하지 않는다. 뉴욕 남부연방법원은 제2연방항소법원 관할이고 로스 사건을 판단한 제3연방항소법원은 별도의 연방항소법원이다. 따라서 로스 판결은 뉴욕 MDL에서 구속적 선례(binding precedent)가 아니다.
미국의 저작권 등록과 저작권 정책을 담당하는 연방기관인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은 생성형 AI 학습 보고서에서 AI 학습의 공정이용 여부를 일률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이용 목적과 변형성, 저작물의 취득 방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현재까지 나온 판결들은 ‘AI 학습이면 공정이용’ 또는 ‘AI 학습이면 저작권 침해’라는 단일한 판단으로 정리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 판결과 미국 저작권청 보고서에서는 데이터 확보 방식, 학습 목적의 변형성, AI 제품과 원저작물 시장의 관계, 기존·잠재적 라이선스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이 공정이용 판단 요소로 다뤄지고 있다.
톰슨 로이터 대변인은 이번 판결 뒤 로이터에 “저작권 존중은 혁신을 촉진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AI 솔루션을 뒷받침하는 지식재산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Q&A
Q. 웨스트로는 무엇인가?
톰슨 로이터가 운영하는 법률정보·리서치 데이터베이스다. 미국 판례와 법령 등 법률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판례의 주요 법률 쟁점을 편집자가 요약한 헤드노트의 저작권이 문제가 됐다.
Q. 로스는 어떤 서비스인가?
AI 법률검색 스타트업 로스 인텔리전스가 개발한 법률검색 서비스다. 자연어 질문을 이용해 관련 판례를 찾아주는 방식으로 웨스트로 등 기존 법률 리서치 서비스와 경쟁했다.
Q. 이번 판결로 ‘비생성형 AI 학습은 공정이용이 아니다’라는 법리가 확정됐나?
그렇게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건은 웨스트로 자료를 이용해 웨스트로와 경쟁하는 AI 법률검색 서비스를 개발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