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관리하는 규제 체계보다 빠르다며 제도적 공백을 지적했다. AI로 설계한 박테리오파지가 항생제 내성 대장균을 빠르게 제거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지만, 같은 기술이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이나 악용 가능성을 낳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더컨버세이션은 8월 18일 보도에서 AI가 정밀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Cas9), 합성생물학과 결합하면서 생물학적 시스템 전체를 설계·변형하는 일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AI 설계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박테리오파지로, 항생제 내성 대장균 균주를 빠르게 극복했다. 크리스퍼 기반 겸상적혈구병 치료제는 최근 승인됐고, 합성생물학은 알고리즘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환경 문제 해결에도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단순한 AI 안전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크리스퍼가 DNA를 표적 편집하는 능력을 넓혔고, 합성생물학이 생물학적 시스템을 설계·구축하는 범위를 확장한 데 이어 AI가 생물학 정보를 분석하고 패턴을 찾아 새로운 유전체를 생성하는 역할까지 맡게 됐다. 이처럼 계산 설계와 생명공학의 경계가 흐려지면, 특정 기술·생물체·활동을 기준으로 짜인 기존 법률만으로 새로운 능력의 위험을 분류하기 어려워진다.
기술의 이른바 이중용도 문제도 규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AI 설계 박테리오파지 연구는 항생제 내성 병원체 대응이라는 유용한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기술이 악용될 가능성, 위험을 사전에 발견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따라서 규제기관은 기술을 단순히 안전하거나 위험하다고 판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익한 연구를 허용하면서 예상 가능한 위험을 관리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유해물질·신생물법에 따라 개발된 30년 된 규제 체계 일부를 대체하는 유전자기술 법안이 연립정부 내 이견으로 내각에서 계류 중이다. 법안은 모든 유전자 기술을 같은 방식으로 다루지 않고, 위험이 낮은 일부 유전자 편집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한편 위험도가 높은 활동에는 통제를 유지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호주는 유전자기술법에 따라 규제기관이 위험을 관리하지만 인간 유전체 편집 등에는 공백이 있고, 미국에서도 규제 대상 생물체의 정의에 들지 않는 갈색 변색 저항성 크리스퍼 편집 버섯이 농무부 감독을 벗어난 사례가 있었다.
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유전자기술 규정 가운데 하나를 운영해 왔지만, 크리스퍼 등장 이후 위험이 낮은 기술에는 간소화된 절차를 적용하고 복잡한 기술에는 더 강한 감독을 유지하는 새 규칙을 마련했다. 더컨버세이션은 각국이 위험 수준을 구분해 유익한 연구를 진행시키되 고위험 활동은 면밀히 심사해야 하며, 기술 변화에 맞춰 위험 분류 자체도 유연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